11분 모두발언서 혐의 부인
"이건희 회장 사면하는 대가로
삼성 뇌물 받았다는 건 모욕
평창올림픽 유치 위해 사면한 것"
이학수 前부회장 만남도 부인
방청석 가족과 잠시 눈인사도
◆“검찰의 무리한 기소, 비통한 심정”
이날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뇌물수수·횡령 등 사건의 첫 공판에서 이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은색 정장에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왼쪽 가슴에는 수인번호 ‘716’이 적힌 배지를 달았다. 정확히 1년 전인 5월23일 국정농단 첫 공판에 나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갑을 차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은 양손이 자유로운 모습이었다. 지난 4월 개정된 교정당국 지침에 따라 65세 이상 고령자와 장애인, 여성 등은 구치소장 허가 하에 법정 출석 시 수갑이나 포승을 하지 않을 수 있다.
검찰이 기소한 이 전 대통령의 혐의는 16개에 달한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비자금 약 349억원을 조성하고, 다스 법인세 31억4500만원 상당을 포탈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삼성에 다스 소송비 67억7000여만원을 대납하게 하고 국가정보원에서 특활비 7억원을 받는 등 11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도 제기됐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2시17분부터 2시28분까지 11분 동안 이어진 모두발언을 “비통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주변에서) 조사 진술이나 재판까지 거부하라는 주장이 많았다”며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은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믿고 검찰이 기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와 국민에게 내 생각을 밝히기 위해 출석했다”고 말했다. ◆“검찰도 무리한 기소 인정할 것”
이날 이 전 대통령은 ‘다스는 형님 회사’라는 주장을 수차례 반복했다. 그는 “다스는 1985년 내 형님과 처남이 만든 회사고, 30여 년간 소유나 경영을 둘러싼 어떤 다툼도 가족 사이에 없었다”며 “여기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이 온당한가 의문을 갖고 있다”고 했다.
삼성 관련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강력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를 시작하면서 권력이 기업에 돈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세무조사로 보복하는 일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런 나에게 이건희 회장을 사면하는 대가로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은 충격이자 모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창올림픽에 세 번째 도전하기로 결정한 뒤 정치적 위험이 있었지만 국익을 위해 사면을 결정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면담했다는 사실도 극구 부인했다. 이 전 부회장과의 면담은 검찰 공소장에서 이 전 대통령과 삼성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주선 역할을 했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이 전 대통령은 “그 사람(김 전 기획관)이 어떻게 해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보호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김 전 기획관이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들여와서 자신을 만나게)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서 (재임 중) 한국 기업인들을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며 “이학수는 대학 후배라고 말만 들었지 퇴임까지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다소 수척한 얼굴의 이 전 대통령은 건강이 좋지 않은 듯 재판 도중 여러 번 기침을 했다. 방청석에는 이 전 대통령의 세 딸이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고 나와 재판을 지켜봤다.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하금열 전 비서실장 등도 법정을 찾았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 중간 휴정 시간에 피고인 대기석으로 들어가면서 방청석 앞쪽에 나란히 앉은 가족 등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인사를 하기도 했다.
신연수/고윤상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