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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낡았네…" 방마다 에어컨 새로 바꿔준 '을밀대 5번방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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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무 LG그룹 회장 타계

    내가 기억하는 구본무 회장

    을밀대 김영길 사장
    수십년간 수행비서 없이 찾아
    그저 평범한 노신사인줄 알았죠

    진미식당 정복순 사장
    간장게장에 한산 소곡주 즐겨
    늘 제게 "회장님, 잘 먹었습니다"
    비서실 통해 생필품 등 챙겨 보내

    이낙연 "마시는 술만 봐도 소탈"
    반기문 "남 배려심이 깊으신 분"
    < 정·재계 인사들 조문 >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 빈소에는 21일 재계와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 정·재계 인사들 조문 >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그룹 회장 빈소에는 21일 재계와 정·관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왼쪽부터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구본무 회장님은 (너무 비싸거나 싸지 않은) 중간 값의 술을 즐겨 드셨습니다. 너무 싼 술을 마시면 위선 같고, 지나치게 비싼 술을 마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자신이 기억하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모습이라며 21일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이 총리는 구 회장을 ‘도덕경영을 실천하고 누구에게나 겸손·소탈하셨던 큰 어른’ ‘LG를 국민의 사랑, 세계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으로 표현하면서 “너무 일찍 떠나셨다”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구 회장은 소탈하면서도 절제된 모습으로 ‘재벌 회장’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놓았다는 평을 듣는다. 정·재계 인사뿐만 아니라 골목 식당 주인들까지 구 회장을 기억하며 애도하는 이유다.

    구 회장은 서민적인 음식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원 승진 축하 파티에서 ‘어묵 부스’를 차린 일화도 있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을 좋아하는데, 재벌 회장이 길거리 어묵을 사 먹으면 자칫 ‘쇼’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이유로 자제하다가 회사 내부 행사에서 ‘기회’를 잡은 것이다.

    윤민정 을밀대 직원(위)과 정복순 진미식당 사장(아래)이 구 회장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윤민정 을밀대 직원(위)과 정복순 진미식당 사장(아래)이 구 회장과의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골목길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오래된 식당도 자주 찾았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공덕동에 있는 간장게장집 ‘진미식당’이다. 허영만 화백의 소개로 처음 이곳을 찾았던 구 회장은 사장단이나 임원들을 데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방문할 정도로 단골이 됐다.

    이 식당의 정복순 사장(67)에게 구 회장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손님이다. “그분에게는 제가 회장님이었어요. 보통 오시는 분들은 ‘아줌마, 음식 잘 먹었어요’라고 하시는데, 구 회장님은 꼭 ‘회장님,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제가 무슨 회장님인가요, 그냥 식당 아줌마지. 정말 다정하고 순수한 분이셨어요.”

    보통 간장게장과 간재미회가 주 메뉴였다. 정 사장이 한산 소곡주를 대접하면 사장단과 나눠 마신 뒤 소주 1~2병을 추가로 시키곤 했다. 주로 2층에서 식사를 했는데, 아래층까지 웃음 소리가 들려올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정 사장은 꽃게 철이 되면 비서실을 통해 살아있는 꽃게를 선물로 보내곤 했다. 구 회장은 그냥 받는 법이 없었다. 화장품이나 생활필수품 세트 등을 꼭 답례로 보냈다. 정 사장은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해 6월 마지막으로 가게를 찾으셨는데, 그때가 마침 제 생일이어서 가게에 꽃다발이 있었어요. 구 회장님이 나가시면서 ‘회장님 생일입니까? 축하합니다’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구 회장은 서울 염리동 좁은 골목길에 있는 평양냉면집 ‘을밀대’도 좋아했다. 주차장이 식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운전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는 손님들은 식당 앞까지 차를 타고 들어오곤 했다. 구 회장은 달랐다. 큰 길에서 내려 차를 주차장으로 보낸 뒤 좁은 골목길을 혼자 걸어 들어왔다. 김영길 을밀대 사장(55)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수행비서도 대동하지 않고, 늘 고개를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들어오시곤 했다”고 기억했다. 점퍼를 걸친 노(老)신사가 가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그가 재벌 회장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늘 5번방에서 식사를 했다. 어느날 식사를 하던 구 회장의 눈에 금성사의 오래된 창문형 에어컨이 들어왔다. “왜 이렇게 에어컨이 낡았느냐”며 비서에게 새 제품으로 교체해주라고 했다. 을밀대 직원들은 극구 사양했다. “굳이 바꿔주시겠다면 5번 방 에어컨만 바꿔 주시면 된다”고 했지만 구 회장은 식당에 있는 20대의 에어컨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줬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이날 빈소를 찾아 구 회장과의 일화를 들려줬다. 반 전 총장은 “비행기를 같이 탄 적이 있는데, 내쪽 조명이 꺼져 불편해 하자 자리를 바꿔 주셨다”며 “유엔 사무총장 시절에는 공관에 있는 전자제품을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주셨다”고 했다.

    안철수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기업인 시절부터 알던 분인데, 너무 큰 상실을 느낀다”며 “고인의 뜻을 받들어 후배 기업인들은 물론 저도 정치권에서 제 역할을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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