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19일(현지시간) 통상전쟁을 해소하기 위한 공동성명서를 내놨다. 서로 관세폭탄을 퍼부으며 전면전으로 치닫는 최악은 막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뇌관을 그대로 남겨둔 ‘봉합’이라는 분석이 더 많다. 합의는 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서다. 언제 어떻게 다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미국의 통상압력에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외견상으론 미국의 승리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과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가 각각 이끄는 미·중 통상협상 대표단은 워싱턴DC에서 지난 17~18일 이틀간 2차 무역협상을 벌였다. 이들은 3~4일 중국 베이징에서 1차 협상을 했다. 베이징 협상이 서로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엔 구체적 성과를 내려는 자리였다.

미국은 크게 두 가지에 초점을 맞췄다. 연간 3750억달러(지난해 기준)에 달하는 대(對)중국 상품수지 적자를 절반 이상 줄이고 중국의 무분별한 기술 탈취를 차단하는 게 핵심이었다.

공동성명서에는 이 같은 내용이 모두 담겼다. 중국이 상품수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고 미국산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을 의미있는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후속 논의를 위해 미국 측 실무대표단이 곧 베이징에 가기로 했다. 또 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이 특허법을 개정하는 것을 포함해 관련법과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숫자 빠진 알맹이 없는 합의”

월스트리트저널(WSJ)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양국의 성명서 발표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합의는 실패했다’고 보도했다. 구체적 숫자와 시기 등이 모두 빠졌다는 지적이다. WSJ는 “중국의 양보안이 미국 언론에 사전에 보도되면서 류허 부총리 등이 불편해 했고 합의도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EC) 위원장은 18일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이 상품수지 적자를 2000억달러 줄이자는 우리 요구에 사실상 합의했다”고 말했다. 류 부총리 등 중국 대표단은 이 같은 발언에 격노했다. 어떤 숫자도 공동성명에 넣기를 거부했다는 설명이다. 커들로의 발언을 언론을 활용한 압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류 부총리는 회담 후 중국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미국 방문에서 적극적이고 실무적이며 풍부하고도 건설적인 성과를 냈다”며 “미·중이 무역전쟁을 하지 않고 상호 관세 부과를 중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상호 합의문에는 없는 내용으로 미·중 간에 협상 기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中, 북핵 지렛대로 역(逆)압박”

2차 협상 분위기는 처음엔 좋았다. 협상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미 정부의 제재 조치를 받고 있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ZTE가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돕겠다고 뜻을 밝혔다. 앞서 ZTE는 이란과 북한에 제품을 수출한 혐의로 12억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받았다. 또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기업들도 수출을 중단하면서 파산 직전에 몰렸다.

중국은 이 같은 움직임에 화답해 미국산 수수에 대한 반덤핑 혐의 조사를 중단하고 미국 기업들이 추진하는 합병건 심사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ZTE 제재 완화가 미 정치권의 반대에 부딪혀 유야무야됐고 이를 현안으로 들고 온 류 부총리 등 협상단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때 커들로의 인터뷰 기사가 나오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미 인터넷매체인 악시오스는 “중국은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미·북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노벨평화상을 타고 싶어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더 완화한 수준의 미·중 통상협상에 사인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북핵 문제까지 엮이면서 미·중 통상 방정식이 더 복잡해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WSJ는 “왕이 중국 외교장관이 다음주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라며 “북핵 문제뿐 아니라 ZTE 등 경제 이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