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대규모 자본 유출에 따른 페소화 급락을 더 이상 방어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위기는 포퓰리즘에 따른 만성 재정적자에 미국 금리 인상과 달러 강세가 겹치면서 본격화했다.

문제는 달러화와 미국 금리 급등에 이어 유가마저 크게 오르면서 이른바 ‘트리플 강세’에 따른 자금 유출이 아르헨티나 이외에 다른 신흥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한 달간 8% 가까이 폭락했고 터키 리라화, 러시아 루블화도 같은 기간 8~9% 안팎 하락했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들의 통화도 한 달 새 3% 가까이 가치가 떨어졌다.

미국과 이란 간 갈등으로 촉발된 유가 상승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금리 인상을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으며 자금 유출을 더욱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자칫 ‘트리플 강세’와 신흥국 자금 유출이 돌고 도는 악순환에 빠지며 ‘긴축발작’까지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달러인덱스는 한 달간 4% 오르며 5개월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고 미국 10년 국채 수익률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연 3%를 오르내리고 있다. 서부텍사스원유(WTI)는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트리플 강세’나 신흥국 위기는 아직까지는 한국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 원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강세를 유지해왔고 주식시장에도 별다른 충격은 없다. 하지만 글로벌 긴축과 신흥국 상황이 언제까지 ‘강 건너 불’에 그칠 것이란 보장은 없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면 국내 기준금리도 마냥 동결할 수만은 없다. 최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것은 그런 맥락이다.

걱정되는 것은 외환 및 금융시장은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지만 실물 경기는 눈에 띄게 둔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과 투자가 모두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실업률 역시 최악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제조업 부진과 고용 악화를 경고할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자칫 경제에 적잖은 충격을 줄 수도 있다. 14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도 문제다. 2월 이후 매도 행진을 이어오고 있는 외국인은 이달 들어서만 증권시장에서 8000억원어치 넘게 팔아치웠다. 정부는 실물 및 금융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거시경제 운용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