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문가들, 북미정상회담에 끼칠 '악영향' 우려
NYT "김정은 만날 준비하면서 이란핵협정 탈퇴는 비생산적"
"이란핵협정도 파기했는데…김정은이 트럼프 믿을수 있겠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체결 3년도 안 된 이란핵협정(JCPOA) 탈퇴를 강행하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추진중인 북미정상회담 등 양국간 협상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는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정 탈퇴 선언 직후 북한에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이 선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지만,미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이 조치가 오히려 북미정상회담 등에 악재가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이란이 체결한 국제적 비핵화 합의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판이 깨지는 상황을 지켜본 북한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합의에 근본적인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인터넷매체 뉴스맥스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합의를 원하며 그 합의가 냉철한 합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트럼프와의 합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그 합의는 다음 선거에서 바뀔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바꿀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수전 라이스는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강한 다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다시 실수하는 것"이라며 "대신 그는 훨씬 선진전이고 예측할 수 없는 적인 북한과의 협상을 목전에 두고 미국은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역시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토니 블링큰도 CNN에 "이란이 준수해온 합의를 (트럼프 행정부가) 던져버렸는데 왜 김정은이 이제 협상을 시작하면서 트럼프가 한 말을 믿어야 하는가? 우리가 합의문을 찢어버리려 한다면 김정은이 우리가 종이에 적은 것을 왜 믿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북한이 모든 핵개발 계획을 솔직하게 폐기하도록 트럼프가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란에서 했던 것처럼 트럼프도 북한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사찰을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정치컨설팅회사인 롱뷰글로벌어드바이저의 DJ피터슨 대표는 이날 경제전문채널인 CNBC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결국 미국을 신뢰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을 신뢰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하면서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굳이 구별하지 않고 그저 미국, 백악관과 거래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 육군 중령을 지낸 대니얼 데이비스 디펜스프라이어리티스(DP) 선임연구원도 이 방송에 "북한 지도자인 김정은이 협상에 성실히 임해 합의를 이뤄내야 할 타당한 이유조차 찾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언론의 비판도 잇따랐다.

NYT는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핵협정 탈퇴) 결정이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둘러싼 견실한 합의에 이르기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사설은 "그가 재협상을 해 적당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합의가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핵프로그램을 놓고 북한과 협상하는 동안 그것이 한국과 게임할 카드가 된다는 이유로 타결을 미룰 수 있음을 시사하기조차 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전쟁도발'에서 '외교'로 태도를 바꾼데 이어 20∼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하기 위해 김정은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이란핵협정 탈퇴를 선언한 것은) 기이할 정도로 거슬리고 비생산적인 메시지인 것 같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NYT는 또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이 왜 미국의 어떤 대통령이 타결한 합의를 미국이 지킬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가"라며 "이란과의 판돈이 크지만 북한과의 판돈은 훨씬 크다"고 평가했다.

NYT는 도쿄발 다른 기사에서 아시아의 많은 전문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신뢰하기 어려운 협상 파트너라는 것을 보여줬으며 이란 핵협정 탈퇴 결정이 북미정상회담의 목표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는 NYT에 "바보만이 미국이 불량국가와의 핵 협상에서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워싱턴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Securing Democracy)의 로라 로젠버그 선임연구원은 "이란 핵협정 탈퇴로 인한 미국의 신뢰 손상은 장기적 거래(합의)에 대한 김정은의 인센티브(동기)를 줄이는 대신 미국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도 승리를 선언하고 귀국하도록 트럼프 대통령을 속이도록 하는 김정은의 인센티브를 증대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AP통신은 분석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는 손을 내밀고, 이란으로부터는 손을 뿌리쳤다"면서 "이란 핵협정의 극적 탈퇴는 트럼프 대통령의 충동과 변덕스러움이 그를 어떻게 역설적 방향으로 그를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생생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란 핵협정보다 북한과의 협상이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어떤 합의도 통과해야 하는 매우 부담스러운 '리트머스 시험'을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CNBC는 "이란핵협정 탈퇴가 다가온 북미 간 핵협상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밝히고 있다"며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움직임이 유동성과 불확실성을 키움으로써 북한과의 대화에 앞서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고 전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볼턴이 이란핵협정 파기는 미국이 불만족스러운 북한의 제안에 퇴짜를 놓을 것을 예고함으로써 (북미회담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신뢰에 손상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지적했다.

CNN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물려받은 이란핵협정을 파기함으로써 북한과의 합의를 위한 판돈을 키웠다"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