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현대자동차는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지니먼트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민간 기업 간 문제가 글로벌 국가 분쟁으로 확산됐다”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ISD 소송 카드 꺼내든 엘리엇, 무엇을 노렸나
이번 ISD 움직임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뇌물죄 재판이나 실적 부진 등으로 국내 기업들이 고전하고 있는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다. 삼성그룹은 엘리엇이 추진하는 국제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죄 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8월 1심 선고에서 징역 5년 실형을 받았지만 지난 2월 항소심에선 징역 2년6개월에 5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났다.

삼성은 1, 2심 판결이 엇갈린 가운데 시민단체, 경찰, 검찰 등이 삼성을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는 상황을 크게 부담스러워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에 엘리엇이 다시 국제 소송건을 들고 나온 것은 이 같은 삼성의 약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삼성으로서는 국제 분쟁으로 인해 뇌물죄 관련 대법원 판결이 지연될 가능성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은 현대차그룹도 ‘엘리엇의 소송 카드’를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리엇은 4월 현대모비스, 현대차, 기아차에 10억달러를 투자한 사실을 공개한 이후 현대차 측에 주주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추가 개선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간 분할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발표한 직후 이 같은 제안을 내놨다.

경제계 안팎에선 ISD 카드가 향후 현대차그룹과 엘리엇 간 분쟁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민사소송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엘리엇이 공개적으로 경고했다는 의미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현대차의 지배구조 개편에 대해 “엘리엇의 제안은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제안”이라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잇따라 내놨다.

좌동욱/장창민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