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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에세이] 벚꽃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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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호 < 신한은행장 sunghowi@shinhan.com >
    [한경에세이] 벚꽃 단상
    매년 이맘때면 아내가 벚꽃 사진을 보내준다. 그동안 구경할 여유가 없어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는데, 지난달 부산 출장길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가로수 길을 지나다가 잠시 차를 세웠다. 순결이라는 꽃말에 걸맞게 나무에 새하얗게 눈이 내린 듯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제 서울에도 벚꽃이 한창이다. 옛사람들은 봄꽃이 피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하여 매화를 필두로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철쭉을 차례로 즐겼다. 그런데 요즘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인지 한꺼번에 피어난다. 여러 봄꽃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지만, 봄의 대표주자는 단연 벚꽃이다. 꽃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수십, 수백 그루가 군락을 이루면 그 화려함은 절정에 이른다.

    겨우 2주 남짓 피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수많은 인파가 명소에 몰려든다. 한국은 ‘진해 군항제’, 일본은 ‘사쿠라마쓰리’가 대표적이다. 미국 워싱턴에도 역사가 100년이 넘는 벚꽃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연간 워싱턴 관광수입의 30%를 이 기간에 얻는다고 하니 벚꽃의 매력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가 보다.

    봄 하면 벚꽃을 가장 먼저 떠올리듯이 오랜 기간 고객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업계를 대표하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브랜드컨설팅사 인터브랜드는 매년 브랜드 가치 순위를 발표한다. 2017년에는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아마존이 1~5위를 차지했다.

    서로 다르게 출발한 기업들이지만 브랜드를 완성하는 과정에는 닮은 모습이 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품과 서비스에 담아내어 최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 고객은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특별하고 매력적인 경험을 갖게 하고, 또 이를 스스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게 만들어야 한다.

    기업의 진정성 있는 노력과 고객의 긍정적인 경험이 쌓여 만들어지는 강력한 브랜드의 힘, 이것이 업계의 상징으로 불리는 글로벌 최고 기업들의 공통점이다.

    금융에서도 브랜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금리와 수수료 같은 가격 요소의 차별성이 줄어들고 고객이 필요한 니즈를 얼마나 빠르고 직관적으로 경험하게 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이 됐다. 또한 상품 자체의 혜택보다는 거래하는 회사의 이미지를 보고 선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봄이면 들려오는 노랫말처럼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거리’를 꽃보다 아름다운 가족, 친구와 함께 걸어보자. 꽃비를 맞으며 나누는 대화와 몇 컷의 사진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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