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항공사가 추진 중인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합작사업)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하고, 정부도 이에 대한 여론에 귀 기울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각국 정부는 상호 경쟁 관계에 있는 사업자들이 경쟁을 회피하고 협력하는 행위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반면 항공사 간 공동운항(코드셰어) 등의 제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항공사 간 제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비자 편익이 경쟁 제한에 따른 불공정 담합의 폐해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정 노선에서 점유율이 높은 항공사들이 담합을 통해 경쟁을 회피하고, 노선을 독점할 경우 소비자 편익은 결코 확보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의 한 항공사와 미국 항공사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조인트벤처 사업은 이런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조인트벤처를 통해 기대되는 긍정효과로 제시된 △노선 경쟁력 강화 △공동 판매 및 마케팅 활동 증대 △마일리지 서비스 확대 등은 이미 두 항공사 간 코드셰어나 협약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조인트벤처를 통한 양사 간 담합 행위가 일반화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상황이다. 항공사 간 조인트벤처는 합병에 준하는 협력 형태다. 해당 항공사들은 하나의 항공사처럼 활동할 수 있게 돼 요금이나 운항 일정 등에서 자유롭게 담합할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미 두 항공사의 인천~시애틀 노선 시장 점유율은 64%에 이르고 있고, 인천~애틀랜타 노선 시장 점유율은 100%에 달하는 독점 노선에 해당돼 심각한 경쟁 제한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미국 연방 법무부가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시행된 항공사 간 조인트벤처 효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쟁관계에 있던 항공사들이 조인트벤처를 할 경우 해당 노선에서 경쟁자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편도 항공운임은 평균 5%씩 인상된 반면 조인트벤처의 긍정효과로 제시된 운임 인하 효과 및 소비자 편익은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규제기관은 항공사 간 조인트벤처에 따른 경쟁 제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할 경우 해당 노선을 조인트벤처 약정에서 제외하거나 이들 항공사가 보유한 허브공항의 슬롯(항공기가 이착륙하는 시간 배정) 중 일부를 경쟁 항공사에 제공하도록 하는 등의 조건을 부과하고 있다.

미 교통부는 이런 관점에 따라 이번 국내 A항공사와 미국 B항공사 간 조인트벤처를 조건부로 허가했다. 미 교통부는 우선 투명성 확보를 위해 상세한 내역을 일반에 공개토록 했다. 또 해당 항공사의 네트워크에 연결하려는 다른 항공사의 요청과 그에 대한 처리를 포함한 상세한 운영 상황을 매년 보고하도록 규정했다. 아울러 조인트벤처 약정 중 타 항공사와의 협력 또는 노선 확대를 제한하는 조항을 삭제토록 지시했다.

미국 규제기관이 이와 같이 자국민의 편익 보장 측면에서 이번 조인트벤처를 검토한 것처럼 한국 규제기관도 한미 간 항공노선을 이용하는 국내 소비자 편익에 초점을 맞춰 심사해야 한다. 조인트벤처를 심사하는 규제기관으로서 단순히 민간 항공사의 수익성이 향상되는 측면에 좌우되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 기회가 없는 다수의 소비자 편익을 지키는 공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