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쉬는 건 아냐…공무원만 쉬고 금융기관·사기업 등 제외
논란의 여지 남아…정부, 위법 여부 놓고 대법원 제소 가능성

올해 70주년을 맞는 제주4·3희생자추념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된다.
70주년 맞는 제주4·3희생자추념일 지방공휴일 된다
20일 열린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정부의 재의 요구로 제주도가 제출한 '제주특별자치도 4·3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이하 제주4·3 지방공휴일 조례)이 재의결됐다.

'공공기관 휴무에 따른 혼란,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조례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 정부의 제동에도 불구하고, 도의회가 해당 조례안을 수정 없이 원안대로 의결한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4·3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은 4·3추념일인 매년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념일에 맞춰 전 도민이 함께 희생자를 추념하며 도민 화합과 통합을 도모하고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고양·전승·실천함으로써 4·3의 해결과 세계평화의 섬 조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안에서 말하는 지방공휴일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이 공식적으로 쉬는 날'을 의미한다.

적용대상은 제주특별자치도 본청과 하부 행정기관, 도 직속기관 및 사업소, 도 합의제행정기관 등이다.

도의회가 재의요구안을 가결함에 따라 제주도는 발 빠르게 수용의사를 밝혔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도의회의 재의결을 제주도민의 뜻으로 존중해 수용하겠다"며 "조례가 제주도로 이송되면 즉시 공포하고, 4·3 지방공휴일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지방공휴일 지정은 대한민국에서 4·3희생자추념일이 처음"이라며 "지방공휴일 시행에 따른 향후 일정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했다.
70주년 맞는 제주4·3희생자추념일 지방공휴일 된다
제주4·3 지방공휴일 조례는 부칙에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도록 규정해 놓고 있어 제주지사가 공포하는 순간 바로 시행된다.

제주도의 4·3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대한 적극 수용 의사를 밝혔음에도 첫 시행에 따른 혼란과 지속 가능 여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먼저 '지방공휴일' 제도를 처음 접한 도민들이 혼란을 느낄 수 있다.

자칫 공휴일이라고 한다면 제주도민 전체가 쉬는 날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례상 지방공휴일 적용대상은 제주특별자치도를 비롯한 하부 행정기관 등에 한정되고, 금융기관과 병원·사기업·학교 등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조례안은 도지사의 책무로 '4·3희생자추념일의 공휴일 지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도민과 각 기관 단체 등이 공휴일 시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일반 사기업 등에서 지방공휴일에 얼마나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정부가 조례의 위법 여부를 가려달라며 대법원에 제소할 가능성도 있다.

전국적으로 지방공휴일 지정이 추진된 적이 없고 지방공휴일을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는 위임 법령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방자치법은 재의결된 조례가 법령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면 재의결된 날부터 20일 이내에 대법원에 제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70주년 맞는 제주4·3희생자추념일 지방공휴일 된다
현행 법령에서 공휴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등에 의해 정해진 날이다.

현재 국가기념일(명절 등 제외)은 공휴일인 국경일(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제헌절), 공휴일인 법정기념일(어린이날, 현충일),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식목일, 근로자의 날, 어버이날 등 45개)로 크게 나뉠 수 있다.

4·3희생자추념일은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 분류돼 있다.

이번 지방공휴일 추진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휴일이 아닌 특정한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만 공휴일로 지정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방자치법상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른 법령에도 지방공휴일을 지정할 수 없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지방공휴일을 지정해 운영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해당한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반면, 법령의 위임 없이는 조례로 지방공휴일을 지정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보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공휴일 지정과 운영은 국민의 생활은 물론 국민의 권리·의무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법령으로 정하거나 조례로 정할 때는 법령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이 같은 논란을 없애기 위해 국회 차원에서 지방자치법 개정 또는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상위 법령에 근거 조항을 넣는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