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특례 심사만 120일, 일본의 4배… 신기술에 책임보험도 의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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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샌드박스' 뜯어보니
선허용 후규제한다더니… '규제혁신 5법' 독소조항
(1) 기업에 과도한 책임 요구
규제특례 끝난 후 소비자 피해도 무한책임
고의나 과실 없어도 기업에 배상책임 지워
(2) 여전히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관료가 신기술 사전 규제하는 시스템"
스타트업·벤처는 심사통과 쉽지 않아
(3) 바이오·의료·관광 제외
이해 관계자 반발… 민감사안 대거 빠져
선허용 후규제한다더니… '규제혁신 5법' 독소조항
(1) 기업에 과도한 책임 요구
규제특례 끝난 후 소비자 피해도 무한책임
고의나 과실 없어도 기업에 배상책임 지워
(2) 여전히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관료가 신기술 사전 규제하는 시스템"
스타트업·벤처는 심사통과 쉽지 않아
(3) 바이오·의료·관광 제외
이해 관계자 반발… 민감사안 대거 빠져
규제 샌드박스 법안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경제정책인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인프라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규제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선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며 “지금까지 시도된 적이 없는 과감한 방식, 혁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하게 주문했다. 하지만 개별 법조항을 들여다본 기업들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혜택을 볼 수 있는 기업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많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업에 과도한 책임 요구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안 등에서 새로운 신기술 및 혁신 서비스가 초래할 소비자 피해 등에 대비하기 위해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신기술과 혁신 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최대 4년간 허용하는 임시 허가나 실증 규제 특례 기간이 끝나더라도 져야 하는 부담이다. 도중에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에 실패해 상품화되지 않더라도 모든 결과에 사후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특히 금융회사는 규제 특례 기간이 끝난 뒤 발생할지 모르는 소비자 피해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배상 기준과 절차, 방식뿐 아니라 기업이 들어야 하는 보험사의 기준과 자격도 정부가 정한다. 여기에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기업들에 배상 책임을 지우는 ‘무과실 책임조항’이 포함된 것도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황당하게 하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무과실 책임조항은 제조물책임법 등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는 의무로 규제 샌드박스 법안에선 제외하거나 경감해야 할 조항인데 오히려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제조물책임법에는 제품 제조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 등을 포함해 네 가지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 법안에는 이런 면책 조항도 빠져 있다.
큰 틀에서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법령의 단서 조항이나 예외 조항이 많으면 여전히 규제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은 빅데이터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 개인정보보호법상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요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삭제할 경우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해도 개인 또는 개인의 위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은 것이 걸림돌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없도록 하는 책임을 기업이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의미”라며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미래 첨단기술에 의한 해킹까지 대비해야 한다면 누가 선뜻 신제품 개발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규제 완화 혜택을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인허가 심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기술이나 혁신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에서 활용하려는 기업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3개 부처에 임시 허가 또는 규제 특례 허용 여부를 신청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기준은 사업 계획서 외에 △제품 또는 서비스의 혁신성과 이용자 편익 △시장 성장 가능성 △신기술 또는 혁신서비스 허용으로 향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발생 가능성 및 손해배상의 적절성 △국민 생명·안전·환경·지역균형발전·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 처리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적 기능을 지닌 금융산업에 대한 심사 기준은 더욱 까다롭다. 최초 2년인 특례 기간을 연장할 때도 해당 부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행정 절차와 규제가 들어간 이유는 향후 특혜 허용으로 문제가 불거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관련 부처 공무원이 특례 허가를 지연하거나 미룰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나 창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위험 회피 능력을 갖춘 소수 대기업 및 대형 금융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더미래연구소장)은 “규제 샌드박스 법안은 선 허용 후 규제라는 명분과 달리 관료들이 신기술 허용 여부를 심사하는 사전 규제 시스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이런 행정 절차와 규제는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다. 해외에선 행정 인허가 절차가 신기술 육성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여러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벤치마크로 삼은 일본의 기업실증특례제도(신기술·신제품·신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한 달 이내 특례 적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3개 관련 법안은 심사 기간이 최장 120일에 이른다. 일본의 4배다. 영국은 10인 미만 소기업과 창업기업에는 규제를 3년간 완전 또는 일부 면제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바이오·의료·관광 등 제외
의료, 바이오, 제약, 서비스 등 신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산업 분야가 규제 샌드박스에선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특별법(지역특구법)을 개정해 지역별 규제 샌드박스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규제 샌드박스 5개 법안 중 아직 국회에 제출하지 못한 유일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프리존특별법)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지역특구법은 규제 특례가 18개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78개)보다 60개나 줄었다. 대기업에 특혜가 될 수 있는 조치들을 제외했다는 것이 민주당 측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의료, 바이오, 제약, 서비스 등 이해 관계자들이 반발하는 민감한 사안이 대거 빠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법안들이 금융위, 산업부, 과기정통부 등 3개 부처에 걸쳐 운영되는 것도 규제 완화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부처 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기업에 과도한 책임 요구
산업융합촉진법 개정안, 금융혁신지원 특별법 제정안 등에서 새로운 신기술 및 혁신 서비스가 초래할 소비자 피해 등에 대비하기 위해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게 대표적이다. 신기술과 혁신 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최대 4년간 허용하는 임시 허가나 실증 규제 특례 기간이 끝나더라도 져야 하는 부담이다. 도중에 신기술 및 신제품 개발에 실패해 상품화되지 않더라도 모든 결과에 사후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특히 금융회사는 규제 특례 기간이 끝난 뒤 발생할지 모르는 소비자 피해와 위험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사전에 마련해야 한다. 배상 기준과 절차, 방식뿐 아니라 기업이 들어야 하는 보험사의 기준과 자격도 정부가 정한다. 여기에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기업들에 배상 책임을 지우는 ‘무과실 책임조항’이 포함된 것도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황당하게 하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혁신성장실장은 “무과실 책임조항은 제조물책임법 등에서 이미 규정하고 있는 의무로 규제 샌드박스 법안에선 제외하거나 경감해야 할 조항인데 오히려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제조물책임법에는 제품 제조 당시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결함을 알지 못하는 경우 등을 포함해 네 가지 면책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규제 샌드박스 법안에는 이런 면책 조항도 빠져 있다.
큰 틀에서 규제가 완화되더라도 법령의 단서 조항이나 예외 조항이 많으면 여전히 규제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많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은 빅데이터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적된 개인정보보호법상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요소의 전부 또는 일부를 삭제할 경우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정보와 결합해도 개인 또는 개인의 위치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은 것이 걸림돌이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개인정보를 식별할 수 없도록 하는 책임을 기업이 전적으로 져야 한다는 의미”라며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미래 첨단기술에 의한 해킹까지 대비해야 한다면 누가 선뜻 신제품 개발에 나서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전히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
규제 완화 혜택을 받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인허가 심사가 지나치게 많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기술이나 혁신 서비스를 규제 샌드박스에서 활용하려는 기업은 금융위원회,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3개 부처에 임시 허가 또는 규제 특례 허용 여부를 신청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심사 기준은 사업 계획서 외에 △제품 또는 서비스의 혁신성과 이용자 편익 △시장 성장 가능성 △신기술 또는 혁신서비스 허용으로 향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발생 가능성 및 손해배상의 적절성 △국민 생명·안전·환경·지역균형발전·개인정보의 안전한 보호 처리 등의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적 기능을 지닌 금융산업에 대한 심사 기준은 더욱 까다롭다. 최초 2년인 특례 기간을 연장할 때도 해당 부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처럼 행정 절차와 규제가 들어간 이유는 향후 특혜 허용으로 문제가 불거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관련 부처 공무원이 특례 허가를 지연하거나 미룰 개연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나 창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위험 회피 능력을 갖춘 소수 대기업 및 대형 금융회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더미래연구소장)은 “규제 샌드박스 법안은 선 허용 후 규제라는 명분과 달리 관료들이 신기술 허용 여부를 심사하는 사전 규제 시스템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이런 행정 절차와 규제는 해외 국가들과 비교해도 과도하다는 평가다. 해외에선 행정 인허가 절차가 신기술 육성의 발목을 잡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여러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가 벤치마크로 삼은 일본의 기업실증특례제도(신기술·신제품·신서비스 테스트를 위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는 한 달 이내 특례 적용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번에 발의된 3개 관련 법안은 심사 기간이 최장 120일에 이른다. 일본의 4배다. 영국은 10인 미만 소기업과 창업기업에는 규제를 3년간 완전 또는 일부 면제하는 파격적인 제도를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바이오·의료·관광 등 제외
의료, 바이오, 제약, 서비스 등 신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은 산업 분야가 규제 샌드박스에선 제외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은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특별법(지역특구법)을 개정해 지역별 규제 샌드박스를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규제 샌드박스 5개 법안 중 아직 국회에 제출하지 못한 유일한 법안이다. 이 법안은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지만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던 ‘지역전략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프리존의 지정과 운영에 관한 특별법’(규제프리존특별법)과 비슷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지역특구법은 규제 특례가 18개에 불과하다. 박근혜 정부의 규제프리존특별법(78개)보다 60개나 줄었다. 대기업에 특혜가 될 수 있는 조치들을 제외했다는 것이 민주당 측 설명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의료, 바이오, 제약, 서비스 등 이해 관계자들이 반발하는 민감한 사안이 대거 빠졌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 법안들이 금융위, 산업부, 과기정통부 등 3개 부처에 걸쳐 운영되는 것도 규제 완화에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부처 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