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복 연구단장
장석복 연구단장
질소 1개와 탄소로 이뤄진 고리형태 화합물인 ‘락탐’은 항생제 같은 약품과 나일론 같은 화학제품 원료로 쓰이는 중요한 중간원료로 손꼽힌다. 독감치료제인 타미플루부터 생물의 유전정보를 담은 DNA 염기쌍도 탄소 질소 결합이 핵심이다. 락탐은 탄소 개수에 따라 3개일 경우 베타락탐, 4개는 감마락탐, 5개는 델타락탐이라고 불린다.

[사이언스] 석유·천연가스서 신약물질 쉽게 구한다… '계산화학의 힘'
인류가 최초로 발견한 페니실린은 ‘베타락탐’ 계열의 항생제다. 감마락탐은 스테로이드나 아미노산 같은 의약품과 일반 화학제품 소재로 주로 활용된다. 락탐을 골격으로 쓰는 ‘레비테라세탐’이란 물질은 뇌전증에, 제티아는 심장혈관 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치료제로 사용된다. 혈관 형성을 억제하는 아자스파이렌 락탐 화합물은 자궁암 치료제로 쓰인다.

락탐은 그동안 아미노산을 반응물로 사용하는 고리화 반응을 통해 합성됐다. 하지만 많은 양의 금속이나 산화제가 필요해 경제적이지 않고 화학반응 과정에서 부산물을 배출해 환경 문제를 유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반응 도중 다른 작용이 일어나 다양한 락탐을 얻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도 있었다. 각국은 좀 더 싸고 편리한 방법으로 탄소·수소와 질소를 결합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해 점차 발표 논문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10년간 약 970편의 논문이 발표됐는데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만 3분의 1에 이른다. 그만큼 과학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관심을 두는 주제다.

질소 원자를 석유와 천연가스에 풍부한 탄화수소에 넣어 다양한 유기화합물에서 발견되는 탄소 질소 결합 구조를 만드는 일은 오랜 숙제였다. 한동안 탄화수소에서 락탐을 얻는 연구는 정체를 겪어왔다. 제조 중간 과정에서 얻는 카보닐나이트렌(탄소와 질소로 구성된 분자)이 열이나 빛에 의해 너무 쉽게 분해됐기 때문이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분자활성촉매반응연구단 장석복 단장(KAIST 교수)과 백무현 부연구단장(KAIST 교수)이 이끄는 연구진은 촉매에서 가능성을 찾았다. 연구진은 탄화수소에 질소 원자를 선택적으로 달라붙게 하는 이리듐 촉매를 개발해 감마락탐을 상온에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2016년 이리듐 촉매를 활용하면 탄화수소와 질소를 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중간 과정에서 부산물로 분해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컴퓨터로 물질의 화학 반응을 분석해 예측하는 계산화학을 활용했다.

촉매반응은 여러 단계의 반응으로 이뤄지고 반응 도중 여러 중간 상태의 물질을 생성한다. 반응 과정에서 이런 중간 물질(중간체) 불안정성 때문에 실험적으로 관측하고 분리하기 어렵다. 이때 계산화학에서 쓰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하면 중간체 구조를 알 수 있고 어떤 반응 경로로 진행하는지 합리적인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마르틴 카르플루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마이클 레빗 스탠퍼드대 교수, 아리에 와르셸 USC(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오늘날 화학자들이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의 복잡한 화학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기반을 닦은 공로로 201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연구진은 이런 방법을 활용해 탄소수소에 질소가 달라붙는 반응이 쉽게 일어나는 이리듐 촉매를 찾아냈다. 그리고 실제 새 촉매를 활용해 탄화수소와 질소원자를 결합, 상온에서 감마 락탐을 합성했다. 장 단장은 “수년간 풀리지 않던 기존 메커니즘에서 벗어나 새 돌파구를 마련했다”며 “의료와 제약, 산업 등에서 활용될 다양한 구조와 작용기를 지니는 감마 락탐을 용이하게 합성하는 데 활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금속촉매를 직접 설계해 유기반응을 개발하는 일은 고난도 기술을 갖춰야 한다. 약 20개 연구단만이 해당 분야를 이끌고 있다. 저스틴 드 보이스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탄소수소 질소화 반응’에서 가장 많이 논문을 쏟아내는 연구진으로 손꼽힌다. 한국도 늦게나마 관련 연구 분야에서 약 3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장 단장 연구진은 이 중 80%인 20편을 발표하며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