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원짜리 고급 세단 vs 4000만원대 승합차.’

누가 봐도 전자를 고를 것 같은데 후자를 택한 대기업 사장이 있다. 작년 말 두산그룹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 영입된 형원준 사장이다. 국내 자동차업체에서 생산하는 최고급 차량인 제네시스 EQ900 대신 기아자동차 카니발을 타고 있다. 대기업 사장에게 제공되는 몇 안 되는 특혜를 포기한 것이다. 두산그룹은 물론 다른 대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전례없는 요구에 두산 측도 처음엔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형 사장이 카니발을 택한 이유는 품위 대신 기동성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지역구와 국회를 수시로 이동해야 하는 국회의원과 지방 행사가 많은 연예인 등이 카니발을 선호하는 이유와 같다. 지난해 11월 “두산의 디지털 전략을 수립하라”는 특명을 받고 그룹 첫 CDO에 오른 그는 전국에 산재한 두산 계열사 공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형 사장은 “두산그룹 전반에 디지털 문화를 장착시키기에 앞서 현장을 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SAP코리아 대표 출신으로 국내 최고 정보기술(IT) 전문가로 꼽힌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그에게 IT시스템 및 디지털 혁신 전략을 총괄하는 CDO 조직과 (주)두산 정보통신BU장을 맡겼다. 두산은 계열사별로 분산된 디지털 기술 및 데이터를 융합해 계열사 간 업무 협업을 활성화하고 사업 시너지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룹 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기술을 신속하고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두산만의 ICT 플랫폼을 개발할 예정이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