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GM의 공장 폐쇄 결정으로 대량 실직이 예상되는 전북 군산을 지원하기 위해 ‘위기지역’ 지정요건을 대폭 완화했다. 기존 지정요건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아예 문턱을 낮춘 것이다. 엄격한 요건에 따라 이뤄져야 할 위기지역 지정이 정치적 판단에 좌우되면서 ‘고무줄 잣대’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미 심각한 실업난에 직면한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정부, “정량지표 충족 못해도 지정”

산업통상자원부는 6일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의 지정기준 등에 관한 고시를 개정·공고했다. 고용노동부도 조만간 고용위기지역 지정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공고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어 8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산업경쟁력강화 장관회의를 열어 군산을 위기지역으로 지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달 20일 “군산에 대한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 및 고용위기지역 지정 방안을 강구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위기지역 지정 방안을 검토해왔다.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되면 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및 재정 지원은 물론 연구개발(R&D)과 사업화 활동에 추가적 지원이 가능해진다. 아직까지 특별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없다.

고용위기지역은 지역 내 기업의 대규모 도산 또는 구조조정 등으로 고용안정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지정해 지원하는 제도다. 2009년 쌍용자동차 법정관리 당시 경기 평택과 2014년 중소형 조선사가 잇달아 폐업한 경남 통영 등 두 곳이 지정됐다.

그런데 군산은 아직 이 같은 위기지역으로 지정될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되려면 산업 특화도와 종사자 수 비중, 산업구조 다양성 등 정량지표에 따른 특정산업 의존도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또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력 사용량, 아파트매매가격지수 등 복잡한 2차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최종적으로 지정 자격이 주어진다.

이에 산업부는 고시를 개정해 특별지역 지정을 사실상 정부의 ‘주관적 판단’에 맡겼다. 고시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해 ‘지역의 주된 산업 중 2개 이상 산업에 위기가 발생했다고 판단되는 지역’과 관련해선 정량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더라도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한국GM 공장 폐쇄로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모두 위기가 발생한 군산을 손쉽게 특별지역으로 지정할 길이 열린 것이다.

고용부 역시 고용위기지역 지정 고시를 손질해 군산 지역을 지정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다른 지역과 형평성 논란

정부의 이런 지정요건 완화를 두고 군산을 지원하기 위한 ‘맞춤형 개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우선 지역경제 침체와 고용위기에 먼저 시달려온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가 거론된다.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위기를 겪은 울산과 경남 창원, 거제 등은 정부에 위기지역 지정을 수차례 건의했지만 아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번번이 반려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군산의 실업률은 2.5%였다. 반면 거제는 6.6%에 이르렀고 통영(5.8%)과 창원(4.3%)도 전국 평균을 웃돌았다.

더 큰 문제는 위기지역 지정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결정되면서 향후 각 지역에서 지정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질 것이라는 점에 있다. 당장 청와대가 군산의 위기지역 지정 방침을 밝힌 직후인 지난달 22일 울산 동구가 고용위기지역 신청 의사를 공식화했다.

오형주/고경봉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