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에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이 빈사지경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의 철수설과 군산공장 폐쇄 발표 등이 맞물리면서 한국GM에 공급하는 납품 물량이 급감한 데다 은행권마저 최근 들어 ‘돈줄’을 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GM 경영이 정상궤도에 오르기 전에 협력사들이 먼저 쓰러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은행 '돈줄 죄기'… 한국GM 협력사가 쓰러진다
비상계획 짜는 한국GM 협력사들

5일 자동차 및 관련 부품업계, 금융권 등에 따르면 국민 신한 KEB하나 우리 등 주요 시중은행들이 지난달부터 상당수 한국GM 협력사의 어음(외상매출채권) 할인을 거부하고 각종 신규 대출도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음 할인 및 신규 대출이 막히면서 한국GM 협력사들은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동안 한국GM은 1차 협력사 300여 곳에 납품 대금으로 현금 대신 60일 만기 전자어음을 줬다. 부품사들은 이 어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형식(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으로 3%가량 할인한 돈을 받아 운영 자금으로 썼다. 대부분 기업 규모가 작아 어음을 바로 현금화해야만 자금 회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 GM 본사의 자금 지원 요구 사실이 알려지고 군산공장 폐쇄 발표까지 이어지자 은행들은 어음 할인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천 군산 창원 등 한국GM 공장이 있는 곳의 지역본부나 영업점 차원에서 여신 건전성 관리를 위해 조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부품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 1차 협력사(300여 곳) 중 40여 곳 정도가 어음 할인을 거부당했는데, 지난달부터 대부분 업체가 어음 할인을 받지 못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신용 등 다른 신규 대출도 아예 끊겼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진 한국GM의 신용도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은행들이 한국GM 협력사들을 ‘중점관리대상 업체’로 분류해 금융거래 자체를 대폭 축소한 탓이다.

은행들은 일부 부품사에 비상경영계획(컨틴전시 플랜) 제출까지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향후 매출 및 영업이익 예상치, 경영 리스크 등에 대한 서류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한국GM 1차 협력사들의 지난달 기준 공장 가동률은 50~70%대로 떨어졌다. 올 들어 매출(1~2월)도 전년 대비 20~30%가량 급감했다.

한국GM “납품대금 두 달 후 현금 지급”

은행들이 어음 할인을 거부하면서 한국GM은 지난달 협력업체들에 앞으로 납품 대금을 60일 후 전액 현금으로 지급하겠다고 공문을 보냈다. 신용도 하락으로 은행들이 어음 할인을 중단하자 어쩔 수 없이 꺼내든 카드다. 한 부품사 대표는 “한국GM에 수차례 할인이 가능한 어음 발행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단기 자금 운용이 꼬이게 돼 직원 월급을 주기도 빠듯한 상황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업계에선 한국GM 1차 협력사들의 자금난이 2·3차 협력업체로 번지는 건 시간 문제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GM 1차 협력사는 300여 곳에 달한다. 2·3차를 합치면 총 3000여 곳에 이른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조만간 1차 협력사들이 2·3차 업체들에 끊어준 60일짜리 어음마저 할인이 거부될 것 같다”며 “영세한 2·3차 협력사들의 경우 자금난이 지속되면 올 상반기를 버티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한국 정부와 GM 간 협상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협력사들의 생존 기반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한국GM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이 한계 상황을 넘어서면 국내 자동차 및 부품산업 생태계마저 흔들릴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는 한국GM 협력업체들의 자금 운용 실태 조사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말 일부 한국GM 협력사 대표들을 불러 자금 상황 등 각종 현안을 점검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협력사들에 대한 여신 현황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장창민/이현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