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천정배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대법원만큼은 법치국가의 자존심을 세워달라"며 이같이 말했다.
천 의원은 "그런 일들은 경제권력의 황제 쪽에선 그 신하들과, 정치권력의 정상 쪽에선 수석비서관과 장관 같은 사람들 사이에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다. 이게 현실세계"라며 "박근혜가 '나에게 100억 원만 주시오. 내가 도와줄게' 하면, 이재용이 '알았소. 돈을 보낼 테니 승계를 도와주시오' 이렇게 말하겠는가. 이랬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천 의원은 이어 "그들이 만나기 전후에 안종범이 박근혜의 지시를 받았고 문형표 등이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고 후려친 것이 합리적 증거 아닌가. 하물며 살인범도 직접적인 자백이 없더라도 과학적인 수사 결과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라고 꼬집었다.
천 의원은 또한 항소심 재판부에 대해 "경영권 승계 작업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발상도 신기하다"며 "삼성은 이미 90년대 말부터 3세 경영권 승계에 총력을 쏟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각종 로비가 지배력 강화엔 도움이 됐지만 경영권 승계 목적은 없었다는 논리는 삼성이 바보라는 것인가, 아니면 국민을 바보로 취급하는 것인가"라고 개탄했다.
천 의원은 이재용 부사장이 박 전 대통령의 겁박과, 최서원(최순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는 재판부 논리에 대해서도 "아버지 시절엔 박정희가 이병철 보다 훨씬 셌는지 몰라도, 박근혜가 이재용을 쥐락펴락 할 수 있었을까? 과연 이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이 국내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였고 이재용 부사장은 '박 전 대통령과 최서원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그런 성격이냐"면서 "박정희 시절에조차도 삼성이 피해자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라며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천 의원은 "2000년대 중반, 내가 법무부장관을 할 때까지도 삼성엔 압수수색 한 번이 없었다. 반면 재계 2위였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은 삼성과 엇비슷한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이 됐다. 삼성만은 (늘)예외였다"면서 "검찰도 압수수색을 못 하니 수사랍시고 인터넷을 뒤져야 하는 대상이 삼성이었다"라고 검찰의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면서 "촛불국민혁명 이후에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되면서 그래도 이젠 법치국가의 자존심을 좀 세울 수 있을지 모른다고 기대했다"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집행유예로 나왔다는 소식에, 아직도 한국의 법은 삼성을 이겨낼 수가 없구나 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삼성에 굴복한 법의 권위를 되찾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가. 대법원 판결을 한번 기다려보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이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은 이 부회장은 석방돼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