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도 책 쓰는 시대… 클래식, '듣기'서 '읽기'로
과거 연주자의 이야기를 듣거나 접하던 통로는 대개 인터뷰였다. 위대한 연주자라면 위인전이나 평전이 나오기는 했다. 이런 것들은 기자나 전문가를 한 차례 거친 정보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연주자들이 ‘직접’ 책을 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이런 책들을 발굴해 번역하는 출판사가 하나둘 생겨났다.

음악서적의 출판·소비 경향도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교양 수양과 입문을 위한 작곡가와 작품을 다룬 책이 대부분이었다면 지금은 무대 현장을 이끄는 연주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직접 담은 책들이 서가의 한 쪽을 차지한다. 19세기까지는 작곡가 중심이던 음악의 역사가 20세기부터는 연주자들이 일구는 식으로 바뀌었다. 출판가와 책에서도 이런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의 《젊은 예술가에게》는 그가 독일어와 영어로 쓴 에세이를 국내에서 번역, 출간(2017)한 것이다. 연주자의 십계명 중 ‘도둑질하지 말라’는 제목의 장이 재밌다. 그는 젊은 연주자가 거장의 연주를 흉내내는 것을 ‘존경’이 아니라 ‘도둑질’에 비유했다.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창조하라는 가르침을 위트를 섞어 풀었다.

수많은 여성을 울린 19세기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는 쇼팽에 관한 책을 냈었다. 2016년 《내 친구 쇼팽》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이 책의 문장들은 리스트 음악 같은 현란한 수사들로 가득 차 있다. 글쓰기와 곡쓰기가 닮은 것으로 따지면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2016년 번역)의 저자이자 테너인 이언 보스트리지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스물아홉 늦은 나이에 테너로 데뷔하기 전,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사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24곡의 노래 제목을 책을 이루는 각 장의 제목으로 삼은 이 책에서 그는 각 곡의 기원과 수없이 불렀던 이 노래에 대한 느낌을 담고 있다. 명징하면서도 부드러운 문장과 책의 전개가 마치 그의 노래를 듣는 듯하다.

한국 음악가들이 저술한 책들도 인기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2015), 부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 최수열의 《젊은 마에스트로의 코데타》(2015)는 일종의 성장기다. 그들의 삶과 글은 모두 클래식 음악이라는 ‘외래어’와 한국어라는 ‘모국어’, 그 사이에 놓여 있다. 좌충우돌의 기록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젊은 독자들이 흥미를 느끼는 대목이다.

음악은 추상예술이고, 언어와 글은 그 반대편에 있다. 음악이 ‘느낌’이라면, 글은 ‘사실’이다. 두 개가 별개로 취급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젠 연주자들도 느낌의 연속에서 사실을 뽑아내고, 사실에 느낌을 불어넣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송현민 < 음악칼럼니스트 bstsong@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