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간당 임금 2.9% 올라… 2009년 이후 최대폭
미국 국채금리 2.85% 급등… 다우지수는 665P 급락
임금 상승 압력 더 커질 땐 금리 인상 속도 빨라질 듯
“미국 인플레이션이 2%를 넘는 게 올해라고 본다. 인플레이션 오버슈트(과열)가 일어날 수 있다.”(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지난달 말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선 물가에 대한 경고가 쏟아졌다. 102개월째 경기 확장을 지속하면서도 2%를 넘지 못하던 미국의 물가가 갑작스레 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해 호황을 구가해온 세계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우려가 있다.
◆물가 상승 가능성 점점 높아져
지난 2일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비농업부문 고용지표는 102개월째 확장 중인 미국 경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고용이 20만 명(계절 조정치) 증가해 시장 예상치(17만8000명)를 웃돌았고, 실업률은 4.1%로 넉 달째 거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했다.
시장이 주목한 건 평균 시간당 임금이었다. 전월 대비 9센트(0.34%) 상승한 26.74달러에 달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9% 올랐다. 이는 2009년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고용시장 호조가 마침내 임금 인상으로 나타난 셈이다. 엘런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임금이 2.9% 올랐을 뿐 아니라 세부 내용을 보면 모든 계층에서 임금이 다 상승했다”며 “임금 상승 압력이 전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런 해석은 미국 채권시장과 증시를 흔들었다. 물가 상승폭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 채권 투자자들은 매도에 나섰다. 국채 기준물인 10년물 수익률(금리)은 폭등해 연 2.852%에 달했다. 4년 만에 최고치다. 미 재무부가 1분기 국채 발행을 늘리기로 한 것도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국채 금리가 오르자 뉴욕증시는 급락했다. 이날 다우지수 하락폭 665.75포인트는 하루 낙폭으론 사상 여섯 번째로 컸다. 금리가 오르면 기업 조달비용을 높여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채권값이 싸지면 위험자산인 주식에서 돈이 빠질 수 있다. 또 이날 금리 상승은 달러 강세를 불렀고, 달러화로 가격이 표시되는 국제 유가와 상품은 하락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의 회복 속에서도 물가는 이례적으로 낮게 유지돼왔다. Fed가 금리를 천천히 인상한 이유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물가 상승 조짐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1.8%까지 올라갔고, 지난달 공개된 12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7%, 근원 PCE 가격지수도 1.5% 상승했다. ◆금리 급등, 증시 폭락 이어지나
물가가 오르면 Fed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Fed는 지난해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올해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시사했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FOMC 회의에서는 “인플레이션이 올해 상승세를 보이며 목표치인 2% 수준에서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작년 12월까지는 “물가가 상승할 것”이란 적극적 표현이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임금이 계속 상승하면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소비가 늘어나 물가상승률이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빨라지면 Fed가 금리를 더 빠르게 또는 더 자주 인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프라 투자 계획이 시행되면 인플레이션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골드만삭스가 주장한 네 차례 기준금리 인상론이 힘을 얻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Fed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선물은 올해 네 차례 금리 인상 가능성을 27%로 예측하고 있다. 1월 고용지표 발표 전에는 24%였지만 3%포인트 높아졌다. 올해 초엔 11%에 불과했다.
Fed에서는 5일 제롬 파월 의장이 취임식을 한다. 월스트리트 일부에선 매파 중심으로 새로 짜인 FOMC에서 경제학박사 학위가 없는 ‘비둘기파’ 파월 의장이 이들 매파에 휘둘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금리 상승이 빨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