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상급 리셉션 때 "北측 인사와 동선 겹치지 않게 해달라" 주문
보수기독교에 부친 한국전 참전…방한 전 "핵포기때까지 압박계속" 메시지
트럼프 새해 국정연설과 같은 궤…북미 '2인자'간 회동 가능성 높지 않아
靑 핵심관계자 "북미 대화 단초 마련되길…서로를 탐색하는 단계다"
펜스 미 부통령, 방한前 대북 강경메시지… 북미접촉 성사 미지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을 위해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이번 주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반도 외교전의 향방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키 맨'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한 기간 그가 보여줄 언행이 북한을 대하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정확한 기류는 물론이고 향후 북미대화의 성사 가능성까지 저울질해보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정착의 모멘텀으로 활용하고 싶어하는 청와대로서는 펜스 부통령의 '역할'에 조심스럽게나마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4일 기자들을 만나 "우리 정부는 평창올림픽이라는 소중한 기회가 열려서 거기서 긴장을 해소할 모멘텀을 확보하고 북미 간 대화를 시작할 단초를 마련하고자 하는 희망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견임을 전제로 "한반도를 둘러싼 주요 국가의 수반들이 오기 때문에 그분들이 빚어내는 정치적 역동성에서 (대화의) 물꼬가 트이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고 강조했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올림픽 기간 펜스 부통령과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訪南)하는 고위급 인사가 '조우'할 가능성도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의 기본적 이념성향과 대북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좌표를 종합해보면 북미관계 진전의 상징으로 해석될만한 상황이 연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더 우세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펜스 부통령은 ▲종교 ▲부친 ▲언론의 영향을 받아 북한에 매우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 사정에 정통한 외교소식통들의 설명이다.

인디애나주 출신 펜스 부통령은 청년기 초기까지만 해도 가톨릭 신자이자 민주당원이었지만 대학생 시절 복음주의 기독교로 개종하고 정치적 견해도 공화당으로 바꾼 인물이다.

당내 강경 보수파인 '티파티'의 일원이기도 한 그의 종교적 정체성은 전체주의 체제인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형성한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부친이 미국 보병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것도 펜스 부통령의 대북관을 매우 강경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있다.

또 펜스 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은 물론 보수 논조의 언론을 크게 의식하고 있어, 핵과 미사일 문제를 놓고 태도를 바꾸지 않는 북한을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펜스 부통령은 2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며칠이 지나면 한국과 일본에 간다"며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하러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특히 "북한이 탄도 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미국을 위협할 때, 우리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할 것"이라며 "북한이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핵과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할 때까지 우리는 모든 경제적·외교적 압력을 가하는 일에 힘을 쏟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확신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 같은 언급은 대북 강경 기조를 재확인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 궤를 같이하면서 북미대화 가능성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차단하려는 메시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밤 문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펜스 부통령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고 일을 정말 잘해서 믿음이 간다"고 크게 칭찬했을 정도로 '절대적 신임'을 보내고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이번 올림픽 기간 펜스 부통령이 북한 고위급 인사와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질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실제로 펜스 부통령 측은 개막식을 전후한 행사 때 북한 측 인사와 마주치치 않도록 의전에 각별히 신경 써줄 것을 청와대에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개막식 당일 정상급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열리는 리셉션에서 북한 측 인사와 가까운 자리에 배치하지 않도록 우리 측에 주문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북한 측과 동선이 겹치지 않기는 바라는 것으로 안다"며 "청와대로서도 현 국면에서 의도적으로 북미가 접촉하는 모양새를 연출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권력서열 2위인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방남해 북미 2인자가 회동하는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있지만 과도한 기대는 금물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펜스 부통령이)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고 한 것을 보면 제재·압박을 이어가겠다는 미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것 같다"면서 "현재는 (북미 대화 가능성과 관련해) 서로를 탐색하는 단계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북한 측도 미국이 대북 강경기조를 이어가는 현 상황에서 북미 접촉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공식 행사에서라도 북한 고위급 인사가 미 측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특별 메시지'를 전달하고 이를 계기로 한 북미 간 물밑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시선도 엄존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아직 북한에서 누가 방남할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며 "북미 간 접촉이나 대화 가능성을 현 단계에서 거론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개막식 전날인 8일 이뤄지는 문 대통령과 펜스 부통령 간의 만찬회동에서 '평창 이후'의 대북정책의 방향을 놓고 한미간의 입장이 어떤 식으로 조율될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을 밑거름으로 북미대화 가능성 등 국면전환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북한의 핵 포기를 견인해내기 위한 '동맹 차원'의 공조를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