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의 기습에 울부짖는 여공들’ ‘부산에 비상계엄 선포’ ‘박정희 대통령 서거’ ‘전두환 대통령 취임’….

YH무역 농성사건, 부마항쟁, 박 전 대통령 피살, 전 전 대통령 취임 등 약 40년 전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알리는 신문기사 제목들이다.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지난달 5일 개막해 다음달 11일까지 계속되는 뮤지컬 ‘모래시계’(사진)는 격동의 역사를 기록한 언론 헤드라인을 빔프로젝터로 쏴 무대 배경으로 자주 등장시킨다. 당시 역사적 현장을 기록한 사진도 다수 나온다. 관객에게 극의 시대적 상황을 알려주는 한편 당시 분위기가 생생하게 피부에 와 닿도 록 하기 위한 설정이다.

극장을 찾은 한 중년 관객은 “당시 그 신문을 실제로 읽었던 일이 생각나 뮤지컬에 몰입이 더 잘 됐다”고 말했다.

뮤지컬 모래시계는 1995년 최고 시청률 64.5%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끈 TV드라마 모래시계를 무대화한 작품이다. 멀리는 박정희 정권(1963~1979년)에서 가깝게는 1993년 슬롯머신 비리 사건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창작 초연작이다. 줄거리는 드라마 모래시계 그대로다. 우석과 태수는 절친한 고등학교 친구지만 우석은 검사가, 태수는 조직폭력배가 되면서 둘은 원하지 않는 대결을 한다. 이들과 친구 또는 연인관계를 맺은 카지노 대부의 딸 혜린도 등장한다. 군부독재와 민주화 운동, 삼청교육대, 정치인에 대한 뇌물상납 관행 등 시대적 모순이 낳은 각종 사건사고는 이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24부작 드라마의 줄거리를 한 회차 무대에 넣다 보니 전개가 압축적이고 빠르다. 이 작품을 제작한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최대한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등장인물이 넘버(뮤지컬에 삽입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대사를 읊는 장면이 다른 작품에 비해 많은 편이다. 관객의 취향에 따라 장점 또는 단점으로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10명 이상이 함께 추는 군무가 많이 나온다. 넘버도 웅장한 느낌의 노래가 많다. 무대 세트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각 장면에 맞게 자주 바뀐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주요 관객층이 20~30대인 데 비해 이 작품은 40대 이상 중장년층 비중이 크다. 드라마 모래시계에 대한 향수 때문으로 보인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의 관람 후기를 보면 “부모님께 효도 선물로 티켓을 사드렸다”는 글이 많다. 한 관람객은 “예매할 때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부모님이 막상 공연을 보고 나서는 매우 좋아했다”며 “긴 스토리를 적절하게 함축한 것과 노래로 잘 표현한 데 대해 특히 호평했다”고 전했다. 6만~14만원.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