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대출을 못 갚을 때 붙는 연체 가산금리를 3%포인트로 낮춘 것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주는 차원이다. 연체했다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상환을 포기하는 대출자를 줄여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금융계에선 연체에 따르는 벌칙(페널티)이 낮아져 빚을 제때 안 갚는 대출자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연체 전후 모두 지원하기로

금융위원회가 18일 발표한 ‘취약·연체차주 지원방안’은 연체 전후를 모두 지원해주는 투트랙 방식이다. 금융업권마다 각각인 연체 가산금리를 오는 4월 최대 3%포인트로 낮추는 것은 연체 후 차주를 위해서다. 연체이자를 부과받는 금융 소비자는 약 137만 명(지난해 6월 기준)에 달한다. 금융위는 자율시행 및 고시개정을 거쳐 4월 말께 전격 시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동안 국내 금융권의 연체 가산금리는 해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내 시중은행은 대출금리에 6~8%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더해 최고 연 15%까지 연체금리를 부과했다. 저축은행이나 카드사는 연체 가산금리를 더해 법정 최고이자율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은행을 기준으로 미국은 약정금리에 3~6%포인트를, 영국은 약정이자율에 2%포인트를 더하는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다.

이미 연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4월 이후엔 낮아진 연체 가산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연간 5조3000억원의 연체이자 감소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다음달부터 6억원 이하의 집을 소유한 1주택자(부부합산 연소득 7000만원 이하)가 주택담보대출을 한 달 이상 연체한 경우 신용회복위원회에 ‘담보권 실행 유예’ 신청을 하면 담보권 실행이 최대 1년간 미뤄진다. 이 기간엔 연체이자도 면제돼 차주는 기존 대출이자만 갚으면 된다. 다만 금리는 ‘기준금리+2.25%포인트’로 정해지는데, 기존 대출이자가 이보다 낮을 땐 기존 금리를 적용한다. 유예기간 동안 직장을 구해 소득이 생기면 유예 신청을 거둬 기존 대출계약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연체 예방대책으로는 다음달 말부터 직장을 잃거나 폐업으로 당장 수입이 끊겨 대출금을 갚기 어려운 경우 원금 상환을 최대 3년까지 유예해주는 방안을 시행한다. 돈을 빌린 금융회사에 실업수당 확인서류 등을 제출하면 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집값 6억원 이하(1주택자), 기타대출은 1억원 이하, 전세대출은 보증금 4억원 이하면 신청할 수 있다. 원금 상환만 미뤄주는 것이어서 분할상환 대출자의 경우 이자는 그대로 갚아야 한다.

◆도덕적 해이 문제없을까

금융계에선 이번 조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빚을 제때 다 갚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이미 장기소액연체를 탕감해주기로 한 데 이어 또 한 번 연체자를 봐주는 정책이 나오는 게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연체이자는 금융회사와 차주 간 약속이기 때문에 돌발변수가 아닌데도 연체자를 피해자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며 “빚을 깎아주고 지원해주는 정책이 반복되면 도덕적 해이는 확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회사에 부담이 전가되면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 부담이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회사들이 기존에 비해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연체 가능성이 낮은 경우에만 대출해줘 경계선에 서 있는 서민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도록 관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일부 악의적인 채무자를 제외하고 차주가 일부러 빚을 갚지 않을 유인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지은/이현일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