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글로벌 Edge] CES 달군 도요타의 변신
1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18년은 일본 경제의 황금기였다. 유럽 각국이 일본 군수품과 각종 생필품을 앞다퉈 수입하려고 했다. 창업도 활발해 1만 개가 넘는 기업이 생겨났다. 마쓰시타공업(파나소닉)과 미쓰비시가스 등도 이때 창업했다. 도요타자동차의 전신인 도요타방직 역시 1918년에 설립했다. 모터 기술자였던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가 24시간 돌아가는 자동 직조기기를 발명한 게 근간이었다.

하지만 사키치보다 도요타를 빛낸 것은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였다. 기이치로는 직조기기에 들어가는 엔진과 각종 부품을 활용해 자동차를 개발하고 회사를 따로 세웠다. 도요타방직이 설립된 지 15년 뒤인 1933년의 일이었다.

"도요타는 원래 車 기업 아니었다"

지금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 사장은 또 다른 변신을 꾀하려 한다. 그는 최근 열린 미국 CES에서 “(도요타는) 수많은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직기를 만드는 것에서 자동차를 개발했다”며 “이제 자동차 회사를 넘어 사람들의 다양한 이동을 도와주는 모빌리티 기업으로 바꾸는 것을 결정했다”고 했다. 아키오 사장은 “우리의 경쟁 상대는 더 이상 자동차 기업이 아니라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회사”라고까지 말했다.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과감한 전환이다. 아키오 사장이 원래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것도 특이하다. 모빌리티 서비스의 핵심인 플랫폼을 구축하려 한다. 모바일 플랫폼을 운영하는 애플처럼 자율주행 플랫폼을 구현하고 싶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당장 피자헛과 아마존, 중국 택시서비스 디디추싱, 우버 등과 제휴를 맺었다. 피자헛과 협력을 맺은 것도 흥미롭다. 피자헛은 배달 서비스를 핵심 역량으로 성장한 피자 업체다. 이제 자율주행차를 통해 보다 신속하고 간편하게 피자를 배달하려 한다. 신선 채소 배송과 의료 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도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가능하다.

모빌리티 플랫폼 생태계 구축 나서

지난해 도요타는 전 세계에서 1035만 대의 차량을 팔아 전년보다 2%가 늘었다. 폭스바겐과 1~2위를 다툰다. 하지만 마냥 즐길 수 없는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산업은 쪼그라들고 있다. 비즈니스 정보 제공업체 IHS 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1.7%나 감소했다. 올해도 그리 밝은 전망은 아니다. 아키오 사장은 찰리 채플린의 ‘넥스트 원’이란 어구를 좋아한다. 이런 시점에서 그는 철저한 변신을 선택한 것이다.

데이터 기업과 플랫폼 기업들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체제다.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건 비단 도요타만이 아니다. GM과 폭스바겐 등 자동차 기업은 물론 가전 기업들도 서비스 사업을 물색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필로시스 등은 2년 전부터 아마존 물류 서비스를 활용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전자기기의 토너나 세제가 떨어지면 자동으로 발주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예 기기 자체를 무상으로 공급하거나 렌털도 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자동차 기업들도 뛰어들고 있다. 기업의 기대수명은 평균 20년이라고 한다. 과감한 변신을 하지 않으면 그냥 도태되는 게 비즈니스 생태계다. 600년 역사의 스웨덴 스토라 엔소는 구리 채광에서 임업 펄프 제지 화학 등 5~6차례 사업을 바꿨다. 장수 기업의 가장 큰 특성은 변화하는 세계에 민감하며 학습과 적응에 뛰어난 것이다. 지금 그런 변신과 혁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다.

오춘호 선임기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