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청년들, 파란하라…알을 깨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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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김동연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그동안 그에게서 경제 정책에 관한 내용을 들을 기회는 많았지만 그의 개인사적인 면은 비교적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자신의 성장과정과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의 주제는 '유쾌한 반란'. 김 부총리는 16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청년들에게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라고 조언했다.
▶김동연의 세가지 질문- 남이 내게 던진 질문,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 사회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김 부총리는 세가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남이 내게 던진 질문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의미한다. 김 부총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가난했던 학창시절,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던 청년 시절을 회상했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청계천의 모습은 그야말로 빈민굴이었습니다. 무허가 판자집이고 땅은 국가땅이었죠. 집은 나무판자로 만든 동넨데,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습니다. 화장실도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쓰고 아침마다 몇십미터씩 줄 서있는 척박한 환경의 동네였습니다. 이곳에 제가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때 돌아가셔서 저희 집이 쫄딱 망했는데, 글에도 가끔 썼지만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망해서 이곳으로 이사왔습니다. 끼니 걱정도 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밥을 먹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습니다"
"저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상업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집에는 어머니 할머니 저와 동생 셋 이렇게 여섯 명이 있었는데 제가 맏이라서 돈 벌어야한다고 해서 갔었습니다. 졸업도 하기 전인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때 취직 시험을 봐서 취직을 했습니다. 그 때가 제가 만 17살이었습니다. 은행은 당시 제법 괜찮은 직장이어서 저희 집에는 서광이 비쳤죠. 먹고살 걱정은 없었습니다. 17살에 가장이었고 약간 으쓱했어요. 좋은 직장이었고 돈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경에 만족하지 못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 그리고 고시공부를 병행했다. 그가 야간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는 두개 고시에 동시 합격,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남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 환경을 극복했다.
그런 김 부총리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되면서였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향한 그는 2학기 연속 모든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저에게 왜 공부하는지, 뭘 공부하려고 하는지 질문 두 가지를 던졌는데 답을 못찾겠더라고요. 첫 질문에 정형적으로 얘기하면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였을 것이지만 이 질문에 제가 계속 고민한다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겠죠. 답을 찾기 어려워서 30대 초반에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봤습니다. 이상한걸 하나 발견했어요. 이게 과연 내가 하고싶은 일이었나? 남이 내가 했으면 좋은 일을 착각하고 사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내가 하고싶은게 뭘까 생각해보니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생활 습관부터 사고 방식까지 그가 살아오던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점수만을 생각하는 수업이 아닌, 정말 듣고싶은 수업을 듣고 하고싶은 연구를 했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그의 33년 공직생활을 지탱해주는 공직생활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그는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마지막, 사회가 던진 문제에 대한 답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김 부총리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킹핀'으로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시스템의 변화를 제시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첫 번째 킹핀은 사회보상체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보상체계는 명문대학교를 나온 사람, 대기업, 공공기관 임직원, 공무원, 이런 사람들에게 보상을 많이 줬습니다. 이런 사회보상체계로는 사회 발전 어렵습니다. 사회보상체계란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의 문제입니다. 저나 기성세대, 사회 지도층이 반성 많이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사회보상체계를 만든게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사회보상체계는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청년들에게는 '창업해라', '창의성을 가져라', '다양화하라'고 합니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이죠. 두 번째는 거버넌스(통치체계) 문제입니다. 쉬운말로 하면,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사회보상체계가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를 결정하는 문제라면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거버넌스 입니다"
▶'파란(破卵)'-알을 깨뜨리려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작은 것,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부터 바꾸라고 조언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 세상을 만날 수 있듯, 주변의 알부터 깨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반란을 일으켜봤습니다. 보통 교수가 과목을 제시하는데, 그 반대로 학생이 과목을 제시하는 걸 시도했습니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일정 기준 넘으면 학점 주고 뽑힌 학생에겐 장학금도 줬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에 60개 정도 과목이 만들어졌습니다. 교수들 찬성했을까요 반대했을까요. 반대하죠. 하지만 이렇게 하니 교수들이 상상도 못할 과목들이 나왔습니다. 10명의 학생들이 자동차를 설계부터 제작까지 해서 국제 대학생 포뮬라에 자신들이 차를 출품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인문대 학생 중 두 명은 세계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수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던졌다. 도전 과정에 실패와 어려움은 당연히 따라오는 말도 덧붙였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도·정책적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왜 시행착오가 없겠습니까. 여러분께 드리고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입니다. 실패와 시행착오 많이 겪으세요. 그게 원동력입니다. 실패를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 교육이, 우리 사회가 자기 하고싶은 일을 찾는 시도를 못하게 하는 건 실패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창업에 실패하면 본인은 물론 주변인도 힘들거란 생각이 들죠. 제도를 고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 사람은 성공했구나, 배울 것이 많겠구나' 하는 사람일수록 실패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실패를 많이 하세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세요"
김소현 기자 ksh@hankyung.com
그런 그가 자신의 성장과정과 실패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다. 강연의 주제는 '유쾌한 반란'. 김 부총리는 16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대학생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청년들에게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라고 조언했다.
▶김동연의 세가지 질문- 남이 내게 던진 질문, 내가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 사회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
김 부총리는 세가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남이 내게 던진 질문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의미한다. 김 부총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 가난했던 학창시절, 가족들을 부양해야 했던 청년 시절을 회상했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 청계천의 모습은 그야말로 빈민굴이었습니다. 무허가 판자집이고 땅은 국가땅이었죠. 집은 나무판자로 만든 동넨데,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습니다. 화장실도 없어서 공중화장실을 쓰고 아침마다 몇십미터씩 줄 서있는 척박한 환경의 동네였습니다. 이곳에 제가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때 돌아가셔서 저희 집이 쫄딱 망했는데, 글에도 가끔 썼지만 망해도 이렇게 망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망해서 이곳으로 이사왔습니다. 끼니 걱정도 했습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밥을 먹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했습니다"
"저는 상업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상업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집에는 어머니 할머니 저와 동생 셋 이렇게 여섯 명이 있었는데 제가 맏이라서 돈 벌어야한다고 해서 갔었습니다. 졸업도 하기 전인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때 취직 시험을 봐서 취직을 했습니다. 그 때가 제가 만 17살이었습니다. 은행은 당시 제법 괜찮은 직장이어서 저희 집에는 서광이 비쳤죠. 먹고살 걱정은 없었습니다. 17살에 가장이었고 약간 으쓱했어요. 좋은 직장이었고 돈도 벌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런 환경에 만족하지 못했고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 그리고 고시공부를 병행했다. 그가 야간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는 두개 고시에 동시 합격,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남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 환경을 극복했다.
그런 김 부총리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되면서였다.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향한 그는 2학기 연속 모든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저에게 왜 공부하는지, 뭘 공부하려고 하는지 질문 두 가지를 던졌는데 답을 못찾겠더라고요. 첫 질문에 정형적으로 얘기하면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서였을 것이지만 이 질문에 제가 계속 고민한다는 것은 답이 아니라는 것이겠죠. 답을 찾기 어려워서 30대 초반에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봤습니다. 이상한걸 하나 발견했어요. 이게 과연 내가 하고싶은 일이었나? 남이 내가 했으면 좋은 일을 착각하고 사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내가 하고싶은게 뭘까 생각해보니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는 생활 습관부터 사고 방식까지 그가 살아오던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점수만을 생각하는 수업이 아닌, 정말 듣고싶은 수업을 듣고 하고싶은 연구를 했다. 그는 이로 말미암아 그의 33년 공직생활을 지탱해주는 공직생활에 대한 이유를 찾았다. 그는 사회변화에 기여하고 싶다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마지막, 사회가 던진 문제에 대한 답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김 부총리의 열망이 담겨 있었다. 그는 우리사회 문제를 해결할 '킹핀'으로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 시스템의 변화를 제시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사회의 첫 번째 킹핀은 사회보상체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보상체계는 명문대학교를 나온 사람, 대기업, 공공기관 임직원, 공무원, 이런 사람들에게 보상을 많이 줬습니다. 이런 사회보상체계로는 사회 발전 어렵습니다. 사회보상체계란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의 문제입니다. 저나 기성세대, 사회 지도층이 반성 많이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사회보상체계를 만든게 그런 사람들이니까요. 사회보상체계는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청년들에게는 '창업해라', '창의성을 가져라', '다양화하라'고 합니다. 굉장히 이율배반적이죠. 두 번째는 거버넌스(통치체계) 문제입니다. 쉬운말로 하면,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사회보상체계가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고를 결정하는 문제라면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거버넌스 입니다"
▶'파란(破卵)'-알을 깨뜨리려야 세상으로 나올 수 있다.
그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 주변의 작은 것,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부터 바꾸라고 조언했다. 새가 알을 깨고 나와야 세상을 만날 수 있듯, 주변의 알부터 깨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대학교에서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반란을 일으켜봤습니다. 보통 교수가 과목을 제시하는데, 그 반대로 학생이 과목을 제시하는 걸 시도했습니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일정 기준 넘으면 학점 주고 뽑힌 학생에겐 장학금도 줬습니다. 그렇게 한 학기에 60개 정도 과목이 만들어졌습니다. 교수들 찬성했을까요 반대했을까요. 반대하죠. 하지만 이렇게 하니 교수들이 상상도 못할 과목들이 나왔습니다. 10명의 학생들이 자동차를 설계부터 제작까지 해서 국제 대학생 포뮬라에 자신들이 차를 출품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인문대 학생 중 두 명은 세계 최초로 장애인을 위한 수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던졌다. 도전 과정에 실패와 어려움은 당연히 따라오는 말도 덧붙였다.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제도·정책적 지원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인생을 살면서 왜 실수가 없겠습니까. 왜 시행착오가 없겠습니까. 여러분께 드리고싶은 이야기는 그런 것입니다. 실패와 시행착오 많이 겪으세요. 그게 원동력입니다. 실패를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우리 교육이, 우리 사회가 자기 하고싶은 일을 찾는 시도를 못하게 하는 건 실패에 대한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창업에 실패하면 본인은 물론 주변인도 힘들거란 생각이 들죠. 제도를 고치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저 사람은 성공했구나, 배울 것이 많겠구나' 하는 사람일수록 실패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실패를 많이 하세요.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성공하세요"
김소현 기자 ks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