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CJ제일제당은 국내 1위 식품기업이다. 가정 간편식 브랜드 ‘비비고’와 ‘고메’를 포함해 장류 브랜드 ‘해찬들’ ‘백설’ ‘햇반’ 등 요리하지 않아도 알 만한 친숙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해외에서 바라보는 CJ제일제당은 좀 다르다. 식품보다는 ‘바이오기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동물 사료에 들어가는 필수아미노산 가운데 트립토판, 라이신, 발린은 매출 기준 세계 1위다.

1988년 후발주자로 아미노산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20년 만에 일본 아지노모토, 미국 에이디엠 등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기업을 제쳤다. 공격적인 연구개발(R&D)로 효과가 큰 새로운 균주 개발에 성공한 덕분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애물단지’였던 바이오사업은 지금 회사의 미래 캐시카우로 성장하고 있다. 1위가 된 사료용 아미노산 시장을 넘어 기능성 아미노산 경쟁력을 확보한 ‘종합 바이오회사’가 되겠다는 게 CJ제일제당의 목표다.

식품기업의 한계를 넘다

CJ제일제당의 전신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1953년 8월 설립한 제일제당공업사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부산 전포동에 설탕공장을 세우고 순수 국내 기술력으로 설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1958년부터는 밀가루를 만들었고 1975년에는 종합조미료인 다시다를 출시해 덩치를 키웠다. 1980년대에는 햄 등 육가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종합 식품기업’이 됐다.

식품기업의 DNA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고 사료용 필수아미노산의 하나인 ‘라이신’ 개발에 뛰어든 게 계기였다. MSG(1964년), 핵산(1977년) 등 식품조미소재(음식 맛을 내는 조미료) 개발에 성공한 발효기술 노하우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단백질은 약 20개의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일부는 식품으로는 체내에서 합성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인위적으로 섭취해야 한다.

초기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매력적인 고부가가치 사업이긴 했지만 그만큼 진입 장벽이 높았다. 아지노모토 등 선진국 기업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1991년 인도네시아 파수루안 공장, 1998년 인도네시아 좀방 공장, 2005년 중국 요성 공장, 2007년 브라질 피라시카바 공장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했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바이오사업을 매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생산 능력을 두 배 늘렸다.

2008년 전환점을 맞았다. CJ제일제당의 바이오사업부가 수율이 높은 새로운 균주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생산성이 뛰어난 균주를 확보하는 것은 바이오사업의 승패를 가르는 요소로 꼽힌다. 글로벌 업체들이 리스크를 이유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중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한 것도 효과를 봤다.

2008년 라이신 생산수율이 글로벌 1위 수준으로 높아졌고 2013년엔 아지노모토를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라이신은 사료용 필수아미노산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시장(약 4조원)이다. 현재 글로벌 점유율은 2위 아지노모토보다 10%포인트가량 높은 22.5%다.

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

라이신 제품의 원가 경쟁력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높이고 뛰어난 균주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제적 R&D 투자 덕분이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바이오사업은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미래형 산업”이라며 투자를 뒷받침했다. 이 회장은 “한국의 우수한 발효기술을 살려 세계 바이오 시장에서 넘볼 수 없는 1등이 되는 것이 꿈”이라며 “선제적 투자를 통해 기술력 향상에 전력투구해 달라”고 주문했다.

라이신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자 다른 부문의 경쟁력도 높아졌다. 2014년에는 또 다른 사료용 필수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서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트립토판은 아지노모토가 처음으로 시장을 개척해 80%를 독점하고 있던 시장이다. 지금은 CJ제일제당이 50%를 점유하고 있다. 3년여에 걸친 R&D 끝에 2014년에 출시한 사료용 아미노산 발린도 2016년에 1위가 됐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메치오닌과 라이신, 쓰레오닌, 트립토판, 발린 등 ‘5대 사료용 아미노산’을 모두 생산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가 된 셈이다.

“종합 바이오회사 될 것”

CJ제일제당은 2016년 매출 8조9413억원을 올렸다. 이 중 바이오사업 매출은 전체의 20%인 1조8016억원. 지난해 바이오 매출은 약 2조원, 올해는 3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바이오 부문은 2010년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기록한 뒤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익률도 꾸준히 두 자릿수대를 유지한다. 성장이 더디고 이익률이 박한 기존 식품사업의 한계를 바이오를 통해 극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CJ제일제당의 매출 구조는 식품이 약 54%(올 3분기 누적 기준)로 가장 크고 사료(21%) 바이오(20%) 헬스케어(5%) 순이다.

CJ제일제당의 목표는 사료용 아미노산을 넘어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기능성 아미노산을 생산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금 하고 있는 그린바이오(생물체를 활용해 유용한 물질을 생산하는 것)를 넘어 바이오에너지 등 화이트바이오까지 확장해 ‘종합 바이오회사’가 되겠다는 목표다.

건강식품, 화장품 소재로 사용되는 기능성 아미노산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중국의 하이더를 인수했다. 2016년에는 미국의 바이오 벤처기업 메타볼릭스를 인수해 화이트바이오 진출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신현재 CJ제일제당 대표는 “‘최초 최고 차별화’라는 그룹의 ‘온리원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R&D 역량을 더욱 강화해 세계 바이오 시장을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