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의 새해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와 개선 조짐이 없는 공공 공사의 저가 발주 행태는 건설업체 생존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건설업의 위상과 경제 기여도에 대한 평가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어서 우려된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들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공공 공사를 발주하는 관행은 개선될 조짐이 없다. 이명박 정부 이후 역대 정부가 수차례 개선을 시도했으나 되레 악화일로에 있다. 공공 공사 저가 발주는 국민이 낸 세금을 아낀다는 명분이지만 내막은 조금 다르다. 지자체장이나 공공기관장이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건설업체의 희생을 강요하는 저가 발주인 까닭이다. 공공 공사의 기획 초기 예정가격 대비 실제 수주금액은 50~70% 수준에 그치는 실정이다.

이는 건설업계의 채산성 악화와 업체 도산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대형 건설사 영업이익을 분석해보면 공공 부문은 78.6%가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규모가 작은 업체의 체감 피해는 더욱 심각해 공공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 도산이 줄을 잇고 있다. 건설업체 경영난은 일자리의 양적 감소와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 그 폐해는 건설업체에 국한하지 않는다. 건설업체가 터무니없는 가격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주한 공공 공사는 품질 저하를 피하기 어렵다.

정부의 SOC 투자 축소 계획은 지금이라도 재고돼야 한다. 올 예산에서 SOC 투자액은 19조원으로 확정됐다. 정부의 당초 계획보다는 다소 늘어났지만 2014년부터 4년간 SOC 예산이 연평균 23조6000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4조6000억원(19.5%) 줄어든 것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2019~2021년 연평균 SOC 예산은 16조6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정부는 기반시설이 충분히 갖춰졌다고 판단한다. 과잉 투자를 우려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2위인 데 비해 인프라 경쟁력은 20위 안팎에 머물고 있다. 또 한국의 국토 면적과 인구 등을 고려한 국토계수당 도로보급률은 1.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35곳 중 29위다. 선진국들은 인프라 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분위기다. 선진국들과 한국의 1인당 교통 인프라 투자액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한국의 2.2배, 캐나다가 2.6배, 호주는 5.7배에 이른다.

정부의 건설산업 관련 정책 방향과는 달리 일반 국민들이 건설산업에 거는 기대는 여전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저성장기에 접어들었고 그나마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수출 산업에 의존해 성장하면서 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내수에 의존하는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건설산업을 쳐다본다. 건설이 잘 돼야 내수가 살고 서민 삶이 나아진다는 공식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경제에서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 건설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제조업, 금융보험업, 정보통신업 등 주요 산업의 2배 안팎에 이른다. 또 건설업의 취업계수는 제조업의 3배 수준이고 전 산업 평균의 1.8배다.

한국 경제의 산적한 현안들은 쉽게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SOC 투자정책이나 공공 공사 저가 발주 문제만 손질해도 국민 삶에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 경제와 사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청년 실업을 다소나마 줄이는 현실적 대안을 건설산업 활성화에서 찾기를 기대한다.

유주현 < 대한건설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