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한경 신춘문예에 시 ‘새살’로 등단한 조윤진 씨는 “10~20년 뒤쯤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등단 기회가 빨리 찾아온 만큼 더욱 더 진심을 담아 쓰는 시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2018 한경 신춘문예에 시 ‘새살’로 등단한 조윤진 씨는 “10~20년 뒤쯤 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등단 기회가 빨리 찾아온 만큼 더욱 더 진심을 담아 쓰는 시인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당선 사실을 알릴 당시, 만 22세. 그야말로 ‘소녀 급제’다. 2018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에 ‘새살’로 당선된 조윤진 씨(23) 얘기다. 그는 “스무 살에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면서 처음 시라는 것을 써봤다”고 했다. 그 전엔 그저 수능을 열심히 준비하던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 재능은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글쓰기 대회에 나가 줄곧 상을 탔다. 막연하게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에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소설가를 꿈꾸던 조씨가 시로 ‘전향’하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 ‘시 개론’ 수업을 듣고 나서였다. “글을 써보겠다고 결심한 것도 나라는 사람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죠. 호흡이 길고 복잡한 소설보다는 함축적인 시가 나를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한 도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시를 접한 지 1년 뒤부터는 1주일에 한 편씩 집중적으로 썼다. 쓰면 쓸수록 “난 시를 써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신춘문예를 준비할 무렵엔 1주일에 세 편씩 써냈다.

일상에서 느끼는 모든 것이 그에겐 시가 된다. 그가 대뜸 보여준 아이폰 메모장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놓은 단상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눈을 감고 몇 발자국이나 더 뗄 수 있을까’ ‘모래 사장 위의 새 발자국’ 같은 구절이다. 조씨는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쓰면 쓸수록 시가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씨에게 시는 ‘자기 자신’과 동의어다. 조씨가 자아를 표현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것은 ‘무한 경쟁’으로 젊은이들을 내모는 사회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다. “학생 때부터 뭐든지 열심히,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자랐어요. ‘못 해도 된다’는 생각은 잘 안 해본 것 같아요.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 같습니다.”

그의 당선작 ‘새살’ 역시 ‘못다한 최선’ 때문에 자책하는 젊은이의 현실과 슬픔이 버무려져 있다. “과제와 아르바이트, 미래에 대한 고민에 둘러싸여 몸살을 크게 앓았을 때 쓴 시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 힘든 환경에 있지만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데, 나는 왜 최선을 다하지 못해 자책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지 자문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초고를 1시간 만에 완성했는데, 쓰고 나서 굉장히 속이 후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는 “아직도 당선 소식이 장난전화 같다”고 했다.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깜짝 놀랐어요. 시를 계속 쓴다면 서른이든 마흔이든 언젠가 등단이라는 기회가 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내 시를 많은 사람이 읽고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이제 두렵기도 합니다.”

조씨가 자신의 시를 읽은 후 유일하게 기뻐할 땐 ‘내가 진심으로 시를 썼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다. 그는 “앞으로도 시에 진심을 담아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제 안에 아직 쓸 얘기가 많이 남아 있는 것이 느껴져요. 어떤 정서를 담아 시를 썼는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진심을 담은 시를 쓰겠습니다.”

詩 당선작

새살 - 조윤진

입 안 무른 살을 혀로 어루만진다
더없이 말랑하고 얇은 껍질들

[2018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 조윤진 씨 "무한 경쟁으로 몸살 앓는 청춘들… 아픈 현실 속 '새살'을 기억하길"
사라지는 순간에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세계들이 뭉그러졌는지 세어본다
당연히 알 수 없지

시간은 자랄수록 넓은 등을 가진다

행복과 안도가 같은 말이 되었을 때
배차간격이 긴 버스를 기다리지 않고 타게 되었을 때
광고가 다 지나가버린 상영관에 앉았을 때
나는 그렇게 야위어 간다

뚱뚱한 고양이의 부드러운 등허리를 어루만졌던 일
운동장 구석진 자리까지 빼놓지 않고 걷던 일
그런 건 정말 오랜 일이 되어
전자레인지에 돌린 우유의 하얀 막처럼
손끝만 대어도 쉽게 쭈그러지지

톡 건드리기만 해도 감당할 수 없어지는
만들다 만 도미노가 떠올라 나는
못 다 한 최선 때문에 자주 울었다
잘못을 빌었다

눈을 찌푸릴수록 선명해지는 세계

얼마나 더 이곳에 머무르게 될 지
아직 알 수 없지

부드럽게 돋아났던 여린 세계들
그런 세계들이 정말 있었던 걸까

● 당선 통보를 받고

"휘청거려 두려워도, 늘 詩로 이야기하는 시인 될 것"

나는 너무 작고 약해 번번이 휘청거렸다.

언젠가 끝내 무너져버린 나를 발견하게 될까봐 무서웠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자주 울었다. 열심히 살지 않았다고,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많았다. 못다 한 최선 때문에 자주 울었다. 그저 그 모습 그대로의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진심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 시라고 생각했다. 온전한 나를 시에 담고 싶었다. 늘 진심이었다.

이런 나의 진심을 읽고 최고의 날을 선물한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시를 쓰는 마음가짐을 가르쳐주신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도 감사인사를 드린다. 포기하지 않도록 기다려주고 이끌어주신 모든 선생님께 이 기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까지 나와 보폭을 맞춰 옆에서 걸어준 시모임 문우들, 문학을 품은 명지대 학우들, 온 마음을 다해 안아준, 나의 반짝이는 장면들에 함께한 모든 이에게 벅찬 마음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내 가족들에게 믿어줘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말로는 도저히 다 표현할 수 없는, 내가 아는 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을 보낸다.

나는 아마도 삶이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휘청거릴 것이다. 휘청거리다 무너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과 같은 순간을 믿어보려고 한다. 그저 내 자신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여기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보려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늘 진심으로.

조윤진 씨는 △1995년 서울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학과 재학 중
왼쪽부터 김수이·문태준·박상수 심사위원
왼쪽부터 김수이·문태준·박상수 심사위원
● 심사평 김수이(문학평론가) 문태준(시인) 박상수(시인·문학평론가)

젊음의 비애가 눈앞에 생생
소박하지만 진실해서 감동적


‘2018 한경 신춘문예’ 응모자가 작년에 비해 두 배 정도 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심사에 들어갔다. 이번 응모작들은 대체로 실감이 사라진 아득한 세계, 점차 희미해지는 너와 나의 존재감, 그것의 기묘한 알레고리화(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표현 양식) 등을 공통 배경으로 삼고 있었다.

1차 관문을 너끈히 통과한 응모자는 박현주, 박은영, 양은경, 안정호, 전수오, 김보라, 이서연, 전명환, 서주완, 조윤진이다. 뒤의 세 명을 최종 집중토론 대상으로 삼았다. 전명환의 ‘도출한 적 없는 윤리성’은 못을 박다가 벽이 전부 무너져 버린 상황의 아이러니가 인상적인 작품이었으나 제목이 생경했고, 알레고리의 타점이 불명확했다. 서주완의 ‘인간적인 새들의 즐거움’은 ‘세계는 좀먹은 탁자에 불과했지만/나는 어떤 것도 올려놓지 못했다’는 좋은 구절이 짜임새 있게 변주·확장·의미화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숙고와 토론 끝에 조윤진의 ‘새살’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못다 한 최선’이 ‘잘못’이 되어 버리는 현실에서 존재감을 확인할 길 없는 젊음의 비애를 선명한 이미지로 그리는 능력이 좋았다. 상처 뒤 새살을 꿈꾼다는 뻔한 상투성을 극복해내는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전개도 인상적이었다. 소박하지만 진실했고 그래서 감동이 있었다. 심사자들의 몫은 여기까지다. 새로운 시인에게 무한한 축복이 함께하기를.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