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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아침의 시] 흰 꽃 만지는 시간 - 이기철(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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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흰 꽃 만지는 시간 - 이기철(1943~)

    아무도 없다고 말하지 마라
    하얗게 씻은 얼굴로 꽃이 왔는데

    흰 꽃은 뜰에 온 나무의 첫마디 인사다
    그런 날은 사람과의 약속은 꽃 진 뒤로 미루자
    누굴 만나고 싶은 나무가 더 많은 꽃을 피운다
    창고에서 새어 나오며 공기들은 가까스로 맑아지고
    유쾌해진 기체들은 가슴을 활짝 열고 꽃밭을 산책한다
    햇살의 재촉에 바빠진 화신은 좋아하는 사람께로 백리에 닿는다
    눈빛 맑은 사람 만나면 그것만으로 한 해를 견딜 수 있다
    흰 꽃 만지는 시간은 영혼을 햇볕에 너는 시간
    찬물에 기저귀를 빨아 대야에 담는 사람의 흰 손이 저랬다
    아름다운 사람이 앉았다 간 자리마다
    다녀간 꽃들의 우편번호가 남아 있다
    풀잎으로 서른 번째 얼굴을 닦는다
    내일모레 언젠가는 그들이 남긴 주소로
    손등이 발갛도록 흰 잉크의 편지를 쓰자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민음사)中


    수선화는 겨울에 피는 꽃으로 유명합니다. 이 시를 보니 1월 제주도에서 수선화 핀 길을 걸을 때, 한적하고 평화로웠던 게 생각납니다. 또 나의 한 해를 견딜 수 있게 해주었던 눈빛이 맑은 사람들도 떠오릅니다. 아무도 없이 비어 있는 뜰에도 가만히 보면 꽃은 피어 있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주변의 사람들도 생각해 보면 다시 마주칠 수 없는 새롭고 신기한 인연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고마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 봐도 좋겠습니다.

    주민현 < 시인(2017년 한경신춘문예 당선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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