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푸틴 패러독스
산타클로스와 로마 황제 복장을 한 슈퍼맨, 갑옷차림으로 곰을 타고 악을 물리치는 영웅, 적을 통쾌하게 내던지는 유도 선수…. 지난주 모스크바에서 개막된 ‘슈퍼 푸틴’ 전시회장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이다.

화가와 조각가들은 푸틴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작품 앞에서 “그는 슈퍼 대통령이고 슈퍼 지도자”라고 외친다. 러시아 국민도 푸틴을 좋아한다. 지지율이 81%에 이른다. 푸틴은 전시회 개막에 맞춰 차기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내년 대선에서 그의 당선은 확정적이다.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투표에 참가하겠다고 밝힌 응답자의 75%가 푸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답했다. 그가 4선에 성공하면 24년간(2000∼2024년) 집권으로 스탈린(1879∼1953) 공산당 서기장(29년) 다음가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런 인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어제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분석 기사가 눈길을 끈다. 푸틴은 서방 언론에 ‘슈퍼 악당’처럼 묘사되지만 이렇게 부정적으로 그려질수록 자국에서는 ‘국제정치의 강력한 배후조종자’로 인식돼 지지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를 ‘푸틴 패러독스’라고 표현했다.

외부의 눈으로 보면 푸틴에게는 악재가 많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으로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최근엔 도핑 스캔들 때문에 러시아 대표팀의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다.

그러나 러시아 정치학자들은 “악재로 여겨지는 이런 사건들이 푸틴에게는 선물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국민 대다수에게 나라가 ‘포위된 요새’ 같은 처지라는 인상을 줘 강한 지도자 아래로 똘똘 뭉치게 한다는 것이다.

푸틴은 이 같은 역설을 지렛대 삼아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중동에서 미국이 헛발질을 하는 사이 이집트, 터키와 협력을 강화하며 주도권을 잡고 있다. 시리아 대통령의 자국민 학살을 눈감아주고 화끈하게 지원했다. 지난 11일에는 시리아를 방문해 양국 군대의 힘으로 내전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나라 밖에서 욕을 먹을수록 자국에서 인기가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은 자칫 전체주의 독재자에게 ‘잘못된 신호’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핵 문제로 국제적인 공분을 사고 있는 북의 김정은이 행여라도 이를 흉내 낼까 걱정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