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블랙 공화국' 될까 불안하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환경에서 기업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걸 연구하는 ‘복잡계 적응 시스템’ 주창자들은 여러 대안을 내놓는다. 그중엔 “뜻밖의 일을 예상하되, 불확실성을 줄이라”는 제안도 들어 있다. 신호를 수집하고, 변화 패턴을 찾아내고, 가능한 모든 결과를 상상하고, 선제적 조치를 취할 것을 권한다(《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2016년 1~2월 합본, ‘기업 생존의 생물학’에서).

국가도 다를 게 없다. 이코노미스트는 《2018 세계 경제 대전망》에서 유럽이 경기가 좋아지고 있지만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갑자기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진원지로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부채에 찌든 정부, 선동가형 정치인 등이 변수로 꼽혔다. 믿기 어려운, 그러나 발생하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블랙 스완(검은 백조)’이 또 들이닥칠까 불안하다는 얘기다. 이게 어디 유럽뿐이겠나.

국내에서 일단의 미래 전문가가 한국의 블랙 스완 후보로 거론하던 것들이 시간이 갈수록 무게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북한발(發) 한반도 위기’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대규모 블랙아웃(정전 사태)’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선언 이후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를 선도하는 ‘간판 대기업의 몰락’도 마찬가지다.

검은 동물은 블랙 스완에 그치지 않는다. ‘방 안의 코끼리’처럼 모두가 그 존재를(심지어 언젠가 블랙 스완이 될 거라는 것까지)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이슈도 급증하고 있다. 투자가 아담 스웨이단이 말하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진 ‘블랙 엘리펀트’가 그것이다.

정부가 강성노조를 의식해 노동개혁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좀비 중소기업’이 득실거려도 표 때문에 보조금을 끊지 못하는 걸 보라. 금융·의료 등 서비스업의 저생산성이 문제임을 알면서도 스스로를 금산분리, 의료 공공성 등의 낡은 정책 틀에 가두는 것도 그렇다. 대학 위기, 인구 문제도 한국에선 언제 블랙 스완으로 변할지 모를 블랙 엘리펀트들이다.

미래학자 존 스위니가 포스트노멀 시대의 ‘마스코트’로 블랙 스완 대신 들고나온 해파리, ‘블랙 젤리피시’를 떠올리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해파리가 수온 상승으로 급증하면서 거대한 발전소나 항공모함 냉각시스템을 망가뜨려 모든 활동을 중지시킨 사건이 적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뭐가 문제일까 싶은 단일 이슈가 주위 환경이 변하면 연쇄 상승작용을 일으켜 블랙 스완으로 발전하는 경우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최저 임금의 사상 최대폭 인상 등이 좋은 사례다. 기업 생산성이 더는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 오면 훈풍은 바로 한파로 바뀔지 모른다. 법인세 인상도 그렇다. 그것 때문에 기업이 당장 해외로 나가는 건 아니라지만, 악화되는 기업환경과 맞물리면 ‘기업 탈출’의 방아쇠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시동이 걸리면 후진이 어려운 공무원 증원, 복지성 수당 신설 등은 어떤가. 성장이 멈추고 세수에 빨간불이 들어오는 순간 ‘큰 정부’는 국가의 질병이 되고 만다.

그래도 정부·여당 내부든 야당이든 제어할 세력이 있고 논쟁이 활발한 사회라면, 검은 동물의 준동을 사전에 어느 정도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정부·여당이 지지율 숫자에 취해서인지 지금 분위기는 그게 아니다. “논쟁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했다가 적폐세력으로 비난받은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부 정책에 할 얘기가 있으면 집에 가서 문 걸어 잠그고 하겠다”고 한다. 야당은 무력하기 짝이 없고 학자는 침묵한다. 정부연구소는 정책 정당화에 혈안이고 민간연구소는 입을 닫은 지 오래다.

정권마다 선심 쓸 일은 당겨서 하고, 책임질 일은 뒤로 미루고, 사건이 터지면 운이 나빴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국가는 어찌 될까. 어느 날 검은 동물이 떼로 몰려올까 두렵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