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행복으로 달리는 '남·행 열차
‘라테 파파’가 늘고 있다. 한 손에 카페라테를 들고, 한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아빠다. 보육 천국으로 소문난 스웨덴에서 생겨난 말인데 요즘 한국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얼마 전 서울 양재동 서초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가족과 미리 보는 크리스마스 음악회’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금요일 저녁인데도 젊은 아빠들로 북적였다. 로비에서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보니 거의 아빠 손을 잡고 왔다. 가족을 위해 아빠들이 열 일 제쳐놓고 달려온 것이다. 아빠들의 육아 바람이 거세다. 육아 교육이나 가족 프로그램에 가면 엄마들 틈에 앉아 있는 아빠가 적잖게 눈에 띈다. 친구 같은 아빠인 ‘프렌디’, 아이와 잘 놀아주는 ‘플래디’를 꿈꾸는 열혈 아빠들이다.

좋은 아빠를 꿈꾸는 건 할아버지도 마찬가지다. 라테 아빠만이 아니라 ‘라테 할빠(할아버지+아빠)’도 있다. 서초구는 육아를 맡은 조부모를 지원하는 ‘손주 돌보미’ 제도를 운영하는데, 할아버지들의 참여가 점점 늘고 있다. 한 어르신은 배운 대로 했더니 손주가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했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남자가 애 본다고 흉보던 건 옛날이다. 요즘은 최신 육아법을 익힌 할빠들이 아기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물린다.

남자가 육아를 ‘도와주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육아와 가사를 당연히 ‘함께하는’ 시대다. 엄마들이 ‘워킹 맘’이 됐듯 아빠들도 ‘쿠킹 남’이 돼 아이를 돌봐야 한다. 그래서 요새 아빠를 ‘제2의 엄마’라고도 부른다.

이런 변화에 낯설어하는 아빠도 적지 않다. 그래서 서초구는 지난해 ‘아버지센터’를 열었다. 라테 아빠를 요구하는 새 트렌드에 잘 적응하도록 돕고, 지친 아버지들에겐 힐링의 시간을 준다. 자치단체에서 아버지를 위한 상설센터를 마련한 건 서초구가 처음인데 개관 1년 만에 1300여 명이 다녀갈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아빠는 최고 요리사’ 강습은 수강 신청이 폭주해 60여 프로그램 중 최고 인기를 자랑한다. 이 시대 아버지들의 니즈가 어디에 있는지 잘 보여준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버지들이 더 원한다. 한 번은 여성 행복 도시를 위한 ‘여행톡(女幸talk)’ 행사에 갔다. 아빠 몇 분이 참석해 ‘남성 행복’도 챙겨달라고 했다. 맞다 싶었다. 남편이 행복해야 아내도 행복하고, 아빠 기가 살아야 아이 기가 산다. 서울시 부시장 시절 ‘여행’ 프로젝트를 지휘해 유엔 공공행정대상을 받은 경험을 살려 남성 행복도 더 챙겨볼 참이다. 다 같이 ‘남행(남성 행복) 열차’ 타고 가족 행복 시대를 달려보자.

조은희 < 서울 서초구청장 gracecho@seocho.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