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IMF 20년…해외여행 250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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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올해 한국은 처음으로 세계 5대 수출국에 오른다. 앞선 나라는 중국 미국 독일 일본밖에 없다. 공식 통계로는 네덜란드가 5위지만 이 나라는 중계무역으로 먹고 산다. 종합상사처럼 남의 매출(수출)을 자신의 것으로 잡는다.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2014년 이후 3년 연속 2만7000달러대에 머물던 박스권을 드디어 탈출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절을 만끽하고 있다. ‘체감경기가 나쁘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는 걱정과 푸념들 속에서도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 해외 여행객 수는 사상 최대치인 2500만 명(연인원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대비 2 대 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벤츠와 BMW가 연간 10만 대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 수입차 점유율은 어느새 15%를 넘어섰다.
어느새 3만달러, 하지만…
20년 전 외환위기의 끔찍한 광경들은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 왜 하루아침에 금리 환율에 대한 경제 주권을 잃게 됐는지에 대한 진단과 반성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꼰대’라는 비아냥을 들을까 봐 그 시절의 기억을 들려주기가 무섭다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경제의 앞날을 우려하는 장년세대에 “또 흘러간 노래냐”고 힐난하는 젊은이들이 없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혹시 위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당시 정부 관료들은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구조개혁 실패였다. 1985년 2456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5년에 1만2337달러로 치솟았다. 10년 만에 다섯 배로 성장했다. 하지만 내리막도 그만큼 빨랐다. 자본·노동 생산성은 급전직하로 돌아섰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이 썼기 때문이다. 이를 말려야 할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기치에 매몰돼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달러당 800~900원대의 저환율과 외환자유화였다. 기업들이 기초체력을 넘어서는 해외 투자에 매달리는 동안 일부 부유층은 영국 해러즈백화점에서 싹쓸이 쇼핑을 즐겼다.
경제적폐는 누가 청산하나
노새에 무거운 짐을 얹으면 그 노새는 달릴 수가 없다. 거기에 짐이 더 불어나면 언젠가 주저앉고 만다. 적폐라는 단어는 이렇게 켜켜이 쌓아올린 짐을 지칭해야 비로소 온당하다. 경제 운용이나 기업 경영의 원리가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과거 우리 경제는 불과 4년(1994~1997년) 만에 파탄을 맞았다. 그 시절 435억달러에 달한 경상수지 적자가 외환을 바닥낸 결정타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고금리로 빌려준 구제금융자금(550억달러)의 79%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반도체 호황을 앞세워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 경제에도 차츰 적폐가 쌓여가고 있다. 민간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노동계의 발호, 경영자율성을 제약하는 수많은 입법, 반도체를 잇는 신성장동력 부재 등이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기업들의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다가 그 옛날처럼 노새가 주저앉을까 두렵다. ‘1달러=100엔=1000원 시대’가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텐데, 전 세계 공항을 누비는 한국 여행객들은 노새가 짊어진 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jih@hankyung.com
크고 작은 부침 속에서도 한국 경제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올해 1인당 국민소득은 3만달러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2014년 이후 3년 연속 2만7000달러대에 머물던 박스권을 드디어 탈출하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절을 만끽하고 있다. ‘체감경기가 나쁘다’ ‘일자리가 사라진다’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는 걱정과 푸념들 속에서도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올해 해외 여행객 수는 사상 최대치인 2500만 명(연인원 기준)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인구 대비 2 대 1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벤츠와 BMW가 연간 10만 대 이상 팔려나가고 있다. 수입차 점유율은 어느새 15%를 넘어섰다.
어느새 3만달러, 하지만…
20년 전 외환위기의 끔찍한 광경들은 이렇게 잊혀져가고 있다. 왜 하루아침에 금리 환율에 대한 경제 주권을 잃게 됐는지에 대한 진단과 반성도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오히려 ‘꼰대’라는 비아냥을 들을까 봐 그 시절의 기억을 들려주기가 무섭다는 사람들을 보고 있다. 경제의 앞날을 우려하는 장년세대에 “또 흘러간 노래냐”고 힐난하는 젊은이들이 없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걱정이다. 혹시 위기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당시 정부 관료들은 외환위기가 기업들의 방만한 차입경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구조개혁 실패였다. 1985년 2456달러였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5년에 1만2337달러로 치솟았다. 10년 만에 다섯 배로 성장했다. 하지만 내리막도 그만큼 빨랐다. 자본·노동 생산성은 급전직하로 돌아섰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버는 것보다 더 많이 요구하고 더 많이 썼기 때문이다. 이를 말려야 할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기치에 매몰돼 반대 방향으로 가버렸다. 달러당 800~900원대의 저환율과 외환자유화였다. 기업들이 기초체력을 넘어서는 해외 투자에 매달리는 동안 일부 부유층은 영국 해러즈백화점에서 싹쓸이 쇼핑을 즐겼다.
경제적폐는 누가 청산하나
노새에 무거운 짐을 얹으면 그 노새는 달릴 수가 없다. 거기에 짐이 더 불어나면 언젠가 주저앉고 만다. 적폐라는 단어는 이렇게 켜켜이 쌓아올린 짐을 지칭해야 비로소 온당하다. 경제 운용이나 기업 경영의 원리가 이와 다를 것이 없다. 과거 우리 경제는 불과 4년(1994~1997년) 만에 파탄을 맞았다. 그 시절 435억달러에 달한 경상수지 적자가 외환을 바닥낸 결정타였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고금리로 빌려준 구제금융자금(550억달러)의 79%에 해당하는 돈이었다.
반도체 호황을 앞세워 3만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 경제에도 차츰 적폐가 쌓여가고 있다. 민간 생산성을 끌어내리는 노동계의 발호, 경영자율성을 제약하는 수많은 입법, 반도체를 잇는 신성장동력 부재 등이다.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기업들의 탄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러다가 그 옛날처럼 노새가 주저앉을까 두렵다. ‘1달러=100엔=1000원 시대’가 저절로 온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텐데, 전 세계 공항을 누비는 한국 여행객들은 노새가 짊어진 짐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조일훈 부국장 겸 산업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