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오페라 '나비부인'의 그곳… 일본 속 작은 유럽 가볼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색다르게 즐기는 일본 여행 (2) 일본 근대화 진원지 나가사키

나가사키=글·사진 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
ADVERTISEMENT
나가사키는 일본 근대화 문물을 최초로 받아들인 역사적인 도시다. 나가사키의 개항 역사를 외국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메이지 유신 이후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실상 나가사키항이 개항된 것은 1571년이었다. 나가사키 근대의 풍경을 보려면 구라바엔에 가야 한다. 구라바엔은 글로버 가든의 일본식 표기다. 구라바엔은 근대화에 문을 연 나가사키에 정착한 서양인 거류지 사람들의 저택을 옮겨온 곳이다. 원래 구라바엔은 나가사키 시내에 있었지만 글로버, 링거, 오르트 주택 등의 서양식 건축물과 아름다운 정원을 나가사키항이 한눈에 보이는 미나미야마테 언덕으로 옮기며 관광지화됐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모티브 된 글로버 정원
ADVERTISEMENT

일본이 유럽에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경제력을 갖추게 해준 인물이다. 일본 젊은이들이 유럽으로 공부하러 갈 때도 아낌없이 지원해줬다고 한다.
글로버의 삶 또한 범상치 않았다. 글로버의 아내 쓰루는 게이샤 출신이었다.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이 작곡됐다고 전해진다.
ADVERTISEMENT
사연 많은 일본 26성인 순교지
나가사키는 가톨릭 역사의 중요한 기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교령을 내렸지만 신앙의 물결은 잔잔히 퍼져나갔다. 가톨릭에 대한 탄압은 계속됐고, 교토와 오사카에서 24명의 외국인 선교사와 신자가 체포됐다. 나가사키까지 끌려가는 순례의 길을 걷는 도중 2명이 더 체포돼 모두 26명이 1597년 2월5일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다.

ADVERTISEMENT
1853년 개항 이후 나가사키 항구를 중심으로 선교사들이 다시 들어왔다. 1862년 로마가톨릭은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한 26인을 성인으로 추대했다. 프랑스 선교사 프티장 신부는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순교지인 니시자카에 성당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거류지 내 외국인들에게만 종교 활동이 허락됐기 때문에 1864년 니시자카가 잘 보이는 오우라 마을에 성당을 세웠다.
원폭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평화공원
나가사키를 성지로 떠올리는 이유는 가톨릭이 박해를 받은 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가사키는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다. 오우라 천주당은 원자폭탄의 투하로
훼손됐으나 반전(反戰)과 평화의 상징물로 복원하지 않고 있다. 모진 역사 속을 꿋꿋이 버텨온 성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성당이다. 하얀 외관은 빛이 바랬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소박하면서 경건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오우라 성당에는 관광객과 천주교 신자의 순례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1945년 8월9일, 히로시마에 이어 두 번째로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평화공원은 원폭 중심지에 자리한다. 원폭의 참상을 알려 ‘세계 평화를 지키자’라는 의미로 원폭 자료관과 평화공원을 만들었다. 원폭 자료관에는 원자폭탄이 투하된 경위, 폐허가 된 나가사키의 모습과 피폭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담긴 사진, 핵무기의 사진과 모형,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당시 마쓰야마초 일대에 살고 있던 1700여 명의 사람들은 방공호에 있던 9세 소녀를 제외하고 모두 사망했다. 나가사키 인구 24만 명 중 15만 명 이상이 사망했거나 부상당했다. 한국인도 1만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참혹한 전쟁의 기록은 자료관을 돌아보는 내내 말을 잃게 한다.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원폭낙하 중심지비를 볼 수 있다. 검은 돌로 만들어진 네모난 비석은 원자폭탄이 터진 상공, 약 500m 지점을 향해 서 있다.
공원 북쪽에는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나가사키 평화 기념상이 있다. 이 지역 출신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가 5년에 걸쳐 완성한 청동상이다. 하늘로 들어 올린 오른손은 전쟁의 위협을, 가로로 뻗은 왼손은 평화를 의미한다. 청동상의 감긴 눈은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의 흔적’ 군함도
나가사키 항에서 18㎞ 떨어진 하시마 섬은 섬 자체가 작고, 섬 위의 건물이 군함의 모습을 연상케해 군함도(軍艦島)라 불린다. 군함도는 1960년대까지 다카시마와 함께 광업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작은 섬이지만 5000명 이상의 주민이 거주했다. 석유가 수입되면서 석탄의 사용량이 줄어 1974년 1월15일 폐광됐다. 폐광 이후 주민들이 떠나 지금은 무인도가 됐다. 수많은 사람이 빠져나가고 폐허가 된 섬은 황량하다. 건물이 노후하고 폐허가 된 곳이 많아 나가사키시에서 정비한 시설 외에 섬 전체를 돌아볼 수 없다. 군함도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 섬은 근대화의 유산이라고 보기에 뼈아픈 곳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을 벌이던 중 젊은 일본인들이 징집돼 광부가 될 사람들이 부족해지자 조선인, 중국인, 동남아시아인이 군함도로 끌려왔다. 그중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하시마 탄광에서 1295명이 숨졌는데, 조선인이 122명이었다. 당시 조선인은 섬으로 들어가는 길을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지옥문’이라고 불렀다.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은 해저 1000m 지하에서 석탄 채굴 작업을 했다. 파도가 들이치는 바닷가 집에 살게 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 살게 하기도 했다.
군함도 탈출을 시도한 조선인이 여러 명 있었으나 파도에 휩쓸리거나 발각돼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화의 표상이라 하기에 여전히 논란이 많은 군함도는 일제강점기 역사에서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여행메모
370년된 석조다리 거닐고… 나가사키 짬뽕 드셔보세요
일본서 가장 오래된 석조다리 메가네바시
메가네바시는 나카시마가와(中島川)를 가로지르는 다리다. 1634년 고후쿠지의 승려 모쿠스 뇨조가 세운 것으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석조다리다. 두 개의 아치 모양이 물에 비치면 동그란 원을 그린다. 그 모습이 마치 안경 같다고 해서 메가네바시(안경다리)라고 한다. 1962년 나가사키 대홍수 때 일부가 무너졌다 복원됐다. 돌다리 주변을 걸으며 차곡차곡 쌓인 돌에서 하트 모양의 돌을 찾는 것도 재미있다.
네덜란드 옮겨 놓은 하우스텐보스
하우스텐보스는 나가사키 오무라 만에서 가까운 사세보 지역에 조성된 대형 테마파크다. 나가사키에서 하우스텐보스까지 버스나 열차로 1시간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네덜란드어로 ‘숲 속의 집’이라는 뜻으로 1992년 3월 문을 열었다. 네덜란드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거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곳으로 유럽에 온 것 같은 이국적인 느낌이 든다. 운하 밑으로 흐르는 바닷물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든다.
일본과 중국이 합쳐진 나가사키 짬뽕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음식인 나가사키 짬뽕은 진한 육수에 고기, 해산물, 채소 등을 넣어 끓인 면 요리다. 1899년 중국 푸젠성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이주한 천핑순이 개업한 중화요리집 시카이로(四海樓)에서 처음 만들었다. 화교나 중국 유학생에게 제공할 저렴하면서도 푸짐한 요리를 고민하다가 쉽게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넣어 짬뽕을 만들었다.
우동과 라멘의 중간 정도 굵기의 면은 쫄깃하다. 나가사키 짬뽕은 일본과 중국의 식문화가 합쳐져 탄생된 요리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