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에서 돈을 받고 온실가스 배출권을 파는 유상할당 제도 시행을 1년 늦추기로 했다. ‘탈(脫)원전·탈석탄 드라이브’로 에너지 정책이 크게 출렁이면서 장기 배출권 할당계획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한 데 따른 고육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 '온실가스 배출권 구입' 1년 늦춰진다
유상할당 3%시 기업 6000억원 부담

23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환경부는 연말 내놓을 예정인 ‘제2차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계획(2018~2020년)’에서 내년도 유상할당 시행계획은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기재부는 24일 공청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할당계획 초안을 산업계에 제시할 예정이다.

온실가스 배출권 유상할당은 정부가 기업에 할당하는 배출권 중 일정 비율을 기업이 정부에 돈을 주고 사게 하는 제도다. 정부는 2014년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제1차 배출권 할당계획(2015~2017년)이 적용되는 올해까지는 배출권을 100% 무료로 할당하되 내년부터 2020년까지는 3%, 2021년부터 2025년까지는 10%를 유상으로 할당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2015년 타결된 유엔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나 줄이려면 유상할당은 꼭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다. 철강·반도체 등 수출량이 많아 무역집약도가 높은 업종은 일단 무상할당 대상으로 분류해 제외한 뒤 점차 대상을 확대해나갈 계획이었다.

정부는 올초 배출권 할당계획을 변경하면서 내년부터 3% 유상할당이 시행될 경우 기업들이 부담할 비용을 연간 6000억원 정도로 추산했다. 반면 산업계는 대상 업종과 규모에 따라 최대 4조5000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일단 내년 유상할당 시행계획이 1년 미뤄지면서 기업들은 이 같은 부담을 덜게 됐다.

탈원전 여파로 유상할당도 ‘삐걱’

유상할당 시행계획이 미뤄진 이유는 새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과 탈석탄으로 대표되는 에너지 정책 변화로 배출권 할당의 근거가 되는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 자체에 큰 폭의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2020년까지 적용되는 제2차 배출권 할당계획은 당초 지난 6월까지 산업별·기업별 할당량이 제시돼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아직 에너지 정책의 큰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뤘다. 여기에다 배출권 담당 부처를 기재부에서 환경부로 옮기면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탓도 작용했다. 결국 정부는 당초 3년치(2018~2020년) 할당량을 한꺼번에 발표하기로 한 계획을 철회하고, 내년도 배출권만 먼저 할당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2019~2020년 할당량을 포함한 제2차 배출권 유상할당 대상 업종과 규모 등은 내년 상반기 산업계와 논의를 거쳐 확정해 2019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산업계는 유상할당 유예로 일단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3년치 할당량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고 내년도 할당량만 주어진다는 점에서 불만이 적지 않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배출권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공장 증설 등 투자나 배출권 거래와 같은 관련 장기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 온실가스 배출권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권리를 기업에 부여한 것으로 한국거래소를 통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다. 정부가 할당한 양보다 배출량이 많으면 거래소에서 사야 한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