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 연구원들이 서울 본사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씨젠 제공
씨젠 연구원들이 서울 본사 연구소에서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씨젠 제공
국내 중소 의료기기업체인 씨젠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진단시약의 개발 기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을 확보했다. 피, 타액 등으로 간편하게 질병을 가려내는 진단시약 개발에 AI를 활용한 국내 첫 시도다. 천종윤 씨젠 대표(사진)는 “AI에 기반한 자동화가 이뤄지면 진단시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1년 걸리던 것은 3일로, 비용은 10분의 1가량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지난달 말 첫 시제품이 나왔는데 연구원이 개발한 것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고 했다.

씨젠, AI 활용 진단시약 개발 비용·기간 확 줄인다
◆AI로 진단시약 개발 자동화

씨젠은 AI를 활용해 진단시약 개발 프로세스의 자동화를 꿈꾸고 있다. 미국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NCBI)에 공개된 세균 바이러스 등 질병 원인균 데이터를 바탕으로 AI가 스스로 타깃 원인균을 찾고 진단시약 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연구원들이 직접 실험을 통해 하던 작업을 디지털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컴퓨터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인실리코 방식을 통해서다.

씨젠은 이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학 컴퓨터공학 통계학 전자공학 등 관련 전문인력을 늘려왔다. 관련 인력은 50명을 웃돈다. 개발 자동화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진단시약이 저렴한 비용에 개발되면 체외진단에 대한 환자들의 접근성이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게 천 대표의 설명이다.

씨젠, AI 활용 진단시약 개발 비용·기간 확 줄인다
◆체외진단 결과 당일 확인 가능

씨젠은 한 번에 여러 감염증에 대해 450개 이상의 원인균을 2~3시간 안에 검출할 수 있는 진단시스템을 내년 상반기 내놓을 계획이다. 천 대표는 “2000년 학내 벤처로 출발해 7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했지만 체외진단 대중화를 이끌 본격적인 사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체외진단 대중화의 걸림돌은 당일 검사가 어렵다는 점이다. 질병마다 진단시약과 장비가 다르다 보니 병원들은 검체를 어느 정도 모은 뒤에 검사를 한다. 천 대표는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지만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채혈하고 검사 결과를 확인하려면 2~3일은 걸린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원인을 모르니 근본적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글로벌 시장 지각변동 일 것”

씨젠은 내년 상반기에 원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원플랫폼은 여러 질병을 하나의 진단기기로 동시에 진단하는 기술이다. 성 감염증, 호흡기 질환, 소화기 질환 등 다양한 질병을 동시에 검사해 당일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방식이다. 천 대표는 “하나의 진단기기로는 하나의 질병밖에 검사할 수 없는 기존 방식을 깬 혁명”이라고 했다.

체외진단업계에 지각 변동도 예상된다. 천 대표는 “원플랫폼은 비슷한 가격에 열 배 이상 종류의 질환을 동시에 진단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로슈, 홀로직 등 글로벌 체외진단업체가 주도하는 체외진단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씨젠은 지난해 737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 매출 63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18.7% 증가했다. 내년 신제품이 출시되면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천 대표는 “내년 나올 신제품은 체외진단시장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치료 중심 의료체계를 예방 중심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