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재무] 금리 오르자… 이자 싼 CP 발행 크게 늘었다
시장 금리가 올 들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국내 기업의 기업어음(CP) 활용이 늘고 있다. 장기 회사채, 은행 한도대출과 비교해 이자가 싸기 때문이다. CP 발행 수요가 늘어나자 대형 증권회사들도 관련 인력을 강화하고 있다.

올 들어 발행잔액 40% 급증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CP 발행잔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약 62조원(일반 전자단기사채 포함)을 나타냈다. 작년 말(45조원) 대비 38% 정도 늘었다. 6월 말 55조원과 비교해도 4개월 동안 13%가량 불어났다. 201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4년 동안 기업들의 CP 발행잔액은 40조원대(기말 잔액 기준)에 머물렀다.

발행주체는 우량 대기업부터 취약업종까지 다양하다. 이달 들어 일반기업(금융·유통업 제외) 중엔 롯데지주(2100억원) CJ제일제당(1000억원) 한섬(500억원) 현대오일뱅크(500억원) CJ대한통운(500억원) 오리온(200억원) SK해운(약 200억원) 세아베스틸(100억원) 등이 CP를 발행했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전반적인 금리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단기금리는 상대적으로 덜 올라 CP 발행 매력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CP 수요처인 시중 단기유동성 자금이 풍부한 덕분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신용등급 ‘AA’ 기업 회사채 금리(3년물 기준)는 작년 말 평균 연 2.1%에서 최근 2.6% 수준으로 0.5%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비해 같은 신용으로 단기자금을 빌릴 때 지급해야 하는 ‘A1’ 등급 CP 금리(3개월물 기준)는 연 1.6~1.7% 수준으로 같은 기간 거의 변동하지 않았다. 기업이 발행과 상환을 자주 반복해야 하는 불편만 감수하면 연간 1%포인트에 가까운 이자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뜻이다.

수수료가 나가는 기업 한도대출(마이너스 통장) 이용을 줄이고 필요할 때마다 CP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자금운용 전략을 바꾸는 기업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고객사의 한도대출 이용 잔액이 없더라도 미사용 수수료 개념으로 한도약정액 대비 연 0.5% 안팎의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한도대출을 해지하고 자금운용 계획에 맞춰 CP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금융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 인수영업 강화

대형 증권사들도 CP 영업인력 강화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금융위원회에서 신규 업무인 단기금융(발행어음) 업무를 인가받을 경우 CP를 인수해달라고 요청하는 고객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서다. 인가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두 배까지 어음을 찍어 조달한 자금으로 회사채와 CP 등에 투자할 수 있다.

금융위는 지난 13일 정례회의를 열어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다섯 개 증권회사를 초대형 IB로 지정하고 한국투자증권의 단기금융업무를 인가했다. 나머지 증권사도 인가 심사 중이다. 최근 단기자금운용 전담부서를 새로 설치하고 관련 인력을 강화하고 있는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고객 수요에 따라 CP 취급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인수 물량을 늘리는 등 예행연습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초대형 IB들의 CP 취급 확대는 주로 대출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업종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자금 조달에 숨통을 터줄 전망이다. 발행어음을 통해 조달하는 자금의 금융비용(발행어음 금리)이 연 2% 안팎임을 고려할 때 연 수익률 3~5% 수준의 고금리 CP를 투자 대상으로 삼아야 이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회사채 발행 담당자는 “건설 해운 조선 등 일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기업이 주요 영업 타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