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한국에선 ‘고향사랑 기부제도’(가칭) 도입 논의가 한창이다. 그 전례는 일본에서 2008년 시행된 ‘고향납세’다. 이 제도는 응원하고픈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한 금액에서 2000엔(약 2만원)을 뺀 만큼을 소득세와 주민세 산정 시 공제하는 방식이다. 지방재정이 열악한 한국에서도 듣는 느낌도 좋고 ‘고향을 위해 뭔가 공헌할 수 있겠다’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이 제도는 2006년 제1차 아베 정권에서 ‘지방 중시’를 부각시키려 검토한 데서 비롯됐다.

고향납세라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출신 고향만이 아니라 타향에도 기부할 수 있으니 ‘고향’납세가 아니라 ‘지역기부’ 제도다. 고향납세는 2011년 동일본 대재해 및 2016년 구마모토(熊本)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큰 힘을 발휘했다. 재정사정이 어렵게 된 이들 지역에 고향납세를 이용한 많은 기부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2011년 고향납세 기부금액은 649억엔으로 2010년의 67억엔에 비해 9.7배 늘어났고, 2016년에는 2844억엔으로 2015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총무성 자료 및 2017년 7월4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그렇다면 고향납세가 재해지역으로의 기부 역할과 같은 좋은 면만 있었을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납세자는 매력적인 답례품을 주는 지역에 기부하는 양상을 보였고, 자치단체 간에는 자기 지역으로 기부를 유도하려 ‘우리 지역을 선택하면 이런 답례품을 드린다’는 식의 과열 경쟁이 불거졌다. 납세자로서는 어차피 내야 할 세금을 기부하는 형태를 취하면서 고급 소고기, 해산물, 여행권 등을 답례품으로 받을 수 있으니 그냥 세금으로 내는 것보다 훨씬 이득이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독이 가 고향납세의 의도가 변질되는 폐단이 나타났다.

고향납세 또는 지역사랑 기부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답례품 경쟁 이외에 다른 함정도 적잖이 도사리고 있다. 이름이야 어떻든 이들 제도는 제로섬(zero sum) 게임에 가깝다. 어느 한 곳의 기부(납세)가 늘어난다는 것은 원래 납부처의 세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세수가 줄어드는 지역(대개는 대도시) 입장에서 보면 불만이 쌓이기 쉽다. 자기 지역을 우선시하려는 지역이기주의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지역사랑 기부제도가 시행되면 인기 지역으로의 쏠림현상이 예상된다. 예컨대 안동소주나 이천쌀과 같은 지역특산물이나 명승지를 갖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간 기부액 차이도 커질 것이다. 그리되면 정녕 재원이 필요한데 기부액이 적은 지역으로서는 ‘왜 우리한테는 이리도 야박한가? 우릴 버리는 것이냐? 더 사랑해 주라’며 매달리는 응석체질이 되거나 지역 간 갈등이 조장될 우려가 있다. 정책당국자와 지역기업 간 유착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도 넘어야 할 과제다.

한국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시행되고 나서 지방세 비중 상승과 같은 재정 면에서의 자기책임은 그리 제고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보다는 국고보조금을 끌어와 지역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어 당선에 유리하도록 하려고 한 정치적 요인이 크게 자리한다. 지역주민의 부담의식을 높이지 않고 고향사랑 기부제도만 강조하다가는 이 또한 선심행정의 표본으로 끝나기 쉽다.

고향납세가 일본에서 뉴스거리로 종종 등장하지만 이용자는 아직 전 국민의 1~2% 수준이다. 한국에서 고향사랑 기부제도가 시행된다면 ‘아,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지역(고향, 타향)을 받쳐주고 있구나’ 하는 고마움의 표시로 받아들이며 건전한 지역활성화에 활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국중호 < 일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