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현존하는 배우 중 '대체불가'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이는 바로 김혜수다. 31년간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매번 엣지있는 연기를 선보인 그가 이번엔 여성 누아르라는 장르에 도전했다. 이안규 감독이 연출한 영화 '미옥'을 통해서다.

8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혜수는 "누아르가 갖는 미덕에 매혹돼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누아르의 매혹적인 지점에는 캐릭터들간의 관계와 어긋남, 감정적 불신, 실제 복수가 있어요. 피해의 미학, 영상의 미학이라고도 하죠. 영화가 끝난 후 남는 굉장히 씁쓸하면서 진하게 밀려오는 감정을 좋아하고 '미옥' 시나리오를 보며 느꼈습니다."

'미옥'은 범죄조직을 재계 유력 기업으로 키워낸 언더보스와 그를 위해 칼을 든 조직의 해결사, 출세를 눈앞에 두고 덜미를 잡힌 비리 검사 세 명의 물러 설 수 없는 싸움을 그렸다.

조직의 언더보스인 나현정(김혜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느와르라는 장르적 특징을 그대로 살림과 동시에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시켰다.

그 중심에선 김혜수는 몸을 날리는 액션 연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음지의 범죄조직에서 살아남은 캐릭터의 생생함을 살려내기 위해 건장한 스턴트맨들과 맞붙었다. 김혜수는 첫 연기 도전을 무사히 끝마친데 대해 이들에게 공을 돌렸다.

"무술팀을 정말 잘 만난 것 같아요. 많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는데 컴팩트하게 준비할 수 있었죠. 액션은 혼자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아예 모르는 초짜니까 무술팀에서 서포트를 정말 잘해주셨어요."
'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극중 김혜수는 바람을 겨우 막을 수 있는 얇은 가죽 자켓 하나 입고 수 많은 악당들을 상대한다. 이번 영화의 작업 중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기도 하다.

"와, 열흘 넘게 찍고 그랬는데 영화에선 찰나의 순간으로 나오더라고요. 일정이 제일 긴게 액션 시퀀스였는데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처음엔 몸도 땡기고 아프고 그랬죠. 10kg짜리 장총을 들고 휘두르는데, 어우 힘들었어요."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 서늘함과 비밀스러운,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욕망을 지닌 인물 나현정은 김혜수가 아니면 섵불리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캐릭터다. 한국 영화계에서 유일무이한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파격적인 반삭발헤어스타일과 의상이 한몫했다.

"촬영 전 회의에서 굉장히 치열하게 의견을 내요. 저만 많이 내는건 아니고 모든 배우들이 그렇게 하죠. (웃음) 그 나이 또래 가장 일반적인 모습으로 위장하는 것은 상식적이고 가장 똘똘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현정은 결을 달리했죠. 이 여자의 위장 직업이 강남의 거대 뷰티살롱이었으니까. 실제로 연예인을 상대하기도 하지만 강남에선 연예인 같은 존재예요. 장르 자체가 누와르니까 과감하게 반영할 수 있는 용기가 났습니다."

멀리서도 돋보이는 헤어 탓에 영화 개봉 전까지 숨기느라 고생도 많았다. 그는 "개봉 전 영화 캐릭터를 노출시키는 것은 국가기밀을 노출하는 것과 다름 없다"라며 "촬영은 없었지만 행사나 외부에 나갈때마다 헤어피스를 붙였다 뗐다해서 이상해보이는 적도 많았다"라고 털어놨다.

'미옥'은 김혜수만이 할 수 있는 영화라는 평가에 "솔직히 부담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포스터가 제 얼굴 중심으로 나오고 그 아래에 '미 옥'이라는 문구가 딱 나오니 '어머'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제 얼굴이 포스터에 나와서가 아니라 포스터만으로도 여성 중심의 영화가 나왔다는 것에 대해 쾌감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 얼굴이 아니라도 반가웠을 것 같아요. 영화 '한공주'도 밀양사건인지 모르고 포스터에 이끌려서 봤거든요. 저거 뭐지? 그런 반가움과 기대감을 주거든요."
'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미옥' 김혜수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강영호 작가
지난해 개봉된 영화 '굿바이 싱글' 당시 여성 중심 영화의 부재가 아쉬웠다고 토로했던 김혜수는 한국 영화계의 현재에 대해 "알게 모르게 시도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예를 들어 '용순'이라는 영화는 초저예산의 작지만 아주 웰메이드인 작품입니다. 자신이 주도해왔던 영역에서 벗어나는 시도가 나쁘지 않았고 반가워요. '미옥'도 그렇고요. 보는 분들은 평가를 할 때 자주 미흡하고 아쉬운 점을 느끼실 수 있죠. 하지만 시도만으로도 박수 칠만하지 않나요?"

그의 말처럼 '미옥' 또한 한국 영화계에도, 김혜수 자신에게도 시도의 발판이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시도는 계속하는 것 같아요. 기준치에 도달하면 또 그 이상을 시도하는 거고요. '여성 누아르 액션 안되겠다'라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영화 한 편으로 모든 가능성은 열리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덕을 찾고, 놓친 부분들에 대한 간극들을 줄여가면서 용기를 내 작업해야 합니다. 누아르건 아니건 여성을 어떤 관점에서 얼마나 제대로 어떤 목소리를 담아냈느냐가 이 작업에선 제일 중요하니까요."

김혜수 주연 영화 '미옥'은 오는 9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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