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 재판부 시절 판결 상당수를 대법원서 심리하는 '진풍경'
"재판 다시 하세요"…대법원에서 깨진 김명수 대법원장 판결
김명수 대법원장이 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선고한 2심 판결이 최근 대법원에서 깨져 되돌아가는 보기드문 풍경이 연출돼 눈길을 끈다.

이는 김 대법원장이 고등부장에서 대법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장으로 직행하면서 일어나게 된 모습이다.

4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이 임명 직전까지 일선에서 재판 업무를 했던 터라 그가 내린 2심 판결이 상고돼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일부는 최근 하급심으로 되돌아갔다.

대법원은 2심 판결에 잘못이 있으면 이를 깨고 직접 선고(파기자판)하거나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거나(파기환송) 원심 법원이 아닌 다른 법원으로 보내는(파기이송)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대법원 2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최근 김천시 교향악단 전 단원들이 김천시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2심 판결이 부당하다며 다시 재판하라고 선고했다.

기존 단원을 재위촉하지 않고 신규 전형을 내걸어 새로 단원을 뽑은 시의 처분이 정당한지를 다투는 사건으로, 김 대법원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2심을 맡았다.

당시 김 대법원장 재판부는 "기존 단원들에게 재위촉에 대한 기대권이 인정되지만, 신규 전형을 거쳐 새 단원을 선발한 김천시의 처분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관들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2부는 "신규 전형에서 지역거주 요건을 둔 것은 합리적이고 공정한 절차가 아니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8월 21일 후보자로 지명된 지 이틀 뒤에도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8월 23일 육아휴직급여 반환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휴직급여를 환수해간 고용노동청의 처분이 정당하다는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2심 재판장이었던 김 대법원장은 아이와 떨어져 거주한 육아휴직자가 받은 휴직급여는 부정하게 받은 급여라며 반환이 정당하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구체적·개별적 사정에 따라 '부정수급'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보고 판단하라고 주문했다.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사건도 많다.

김 대법원장은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 "출장목욕 등 방문요양 서비스를 노인요양급여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는데, 이 사건은 건강보험공단이 상고해 대법원이 1년 8개월째 심리 중이다.

이밖에도 김 대법원장이 고법 부장 시절 선고한 여러 사건이 대법원에 넘어왔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2월까지 서울고법 행정10부에서 재판했고, 춘천지법원장 시절에도 서울고법 원외재판부 재판장을 맡아 많은 2심 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의 2심 판결을 대법관들이 심리하는 구도여서 다소 곤혹스러운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도 "대법원장이 과거 선고한 판결이라도 각 대법관이 자유로운 법적 판단에 따라 심사하는 것이 건강한 사법부의 모습을 증명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