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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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상 주식회사의 필수기관인 이사·감사의 선임 및 해임은 주주총회 결의사항이다. 주총에서 이사를 선임하지만 상법은 선임된 이사·감사는 회사와 위임관계에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이사회의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으며 다른 이사의 업무집행을 감독할 권한을 갖는다. 감사는 회사에 대한 수임인(법률행위나 기타 사무의 처리를 위임받은 사람)으로서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사한다. 이와 같이 이사와 감사는 회사에 대해 수임인의 지위에 있을 뿐 주총이나 주주, 기타 회사기관의 대리인이나 사용인은 아니다.

주총에서 이사 혹은 감사를 선임한 경우 그 피선임자와 해당 회사의 사이에 임용계약이 필요한지에 관해 대법원 판결은 일관되게 임용계약이 필요하다는 태도를 견지해 왔다. 하물며 대학생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려는 경우에도 점장 사이에 근로계약서를 써야 한다는 점에 비춰 보면 이사·감사 선임 시에 대표이사와 임용계약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기가 어려웠다.

이처럼 한결같은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하급심 법원의 판단은 오락가락했다. 2015년 소액주주 측 후보가 주총에서 상임감사로 선임된 것(본지 2015년 5월6일자 A21면 참조)을 둘러싼 어느 가처분 사건에서 부산지방법원은 기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주총에서 감사선임의 결의만 있을 뿐 회사와 임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는 아직 감사로서의 지위를 취득했다고 할 수 없다고 결정(부산지방법원 2015년 6월22일 2015카합10266 결정)했다. 그런데 항고심인 부산고등법원은 피선임자의 감사로서 지위를 임시적으로 인정해(부산고등법원 2015년 10월30일 2015라5043 결정) 부산지방법원의 결정을 취소한 바 있다.

이 판결의 대상이 된 사실관계를 들여다보자. 피고는 가전제품의 제작, 판매, 서비스 등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상장법인인 S주식회사다. S사의 주주 3인은 2014년 9월16일 수원지방법원에 임시주총소집허가신청을 해 한 달 뒤인 10월17일 위 법원으로부터 임시의장 선임건, S사의 이사인 A와 감사인 B의 해임건, 신규 이사와 감사의 선임건 등을 회의 목적사항으로 하는 S사의 임시주총을 소집할 것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결정을 받았다. 그해 12월1일 9시께 개최된 S사의 임시주총에서 S사 발행주식의 47.5%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이 출석해 임시의장을 선임했으며, 그 임시의장은 동 주총이 적법하게 성립됐음을 알리고 개회를 선언한 뒤 법원으로부터 허가받은 주총의 의안대로 의사를 진행했다.

오락가락한 하급심 판단

동 임시주총에서 현 대표이사인 A를 S사의 이사에서 해임하고 C를 후임 이사로 선임하는 결의를 했으며, B를 S사의 감사에서 해임하고 D를 후임 감사로 선임하는 결의를 했다. 이 같은 결의는 S사의 정관이나 상법에 따른 의결정족수를 충족했다. 이에 C와 D는 2015년 4월1일께 S사에 동 임시주총 결의에 따라 원고인 자신들과 이사 또는 감사 임용계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서면을 보냈다. 그러나 S사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임에 따라 원고들은 법원에 이사 및 감사의 지위에 있음을 확인하는 청구를 했다.

이에 대해 2015년 11월 1심 법원인 수원지방법원은 주총에서 이사 및 감사 선임 결의가 적법하게 이뤄진 경우 별도의 임용계약 체결 없이 피선임자 승낙만으로 바로 이사 및 감사 지위를 취득하게 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해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016년 8월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은 S사 임시주총에서의 선임결의는 유효하지만 C와 D 및 회사 사이에 아직 임용계약이 체결되지 않았으므로 S사의 사내이사나 감사로서의 지위를 취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1심 법원의 판결을 뒤집었다.

임용계약 필요하다는 기존 태도 바꿔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에 상고됐다. 그동안 대법원이 제시한 확고한 법리에도 불구하고 하급심의 판단이 일관되지 못하자,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배정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이 판결에서 피선임자(C, D)의 승낙만 있으면 대표이사와의 임용계약이 필요없다고 풀이하면서 기존의 판결을 변경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주총에서 이사·감사 선임결의 후에 대표이사의 임용계약이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대한 논거를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몇 가지를 간추려 보자.

첫째, 주총에서의 이사·감사 선임결의와는 별도로 대표이사와의 임용계약이 있어야만 이사·감사의 지위가 인정된다면 이는 이사·감사 선임을 주총의 전속적 권한으로 규정해 주주들의 단체적 의사결정 사항으로 정한 상법의 취지에 배치된다.

둘째, 주총에서 경영진 교체를 위해 새로운 이사를 선임하는 결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퇴임하는 대표이사가 임용계약의 청약을 하지 않아 그 피선임자가 이사로서의 지위를 취득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주주로서는 효과적인 구제책이 없다는 문제점이 드러난다.

셋째, 상법은 감사의 독립성 확보 차원에서 그 선임에 대해 3%를 초과하는 수의 주식을 가진 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는데, 만약 주총에서 감사로 선임된 자에 대해 대표이사가 임용계약의 청약을 하지 않아 감사로서의 지위를 취득하지 못한다면 상법이 감사 선임에 관한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취지가 사라져 부당하므로 감사의 취임 여부를 감사 대상인 대표이사에게 맡기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

“주주총회가 최고기관” 확인

기존 대법원 판결 아래에서 주총의 이사·감사 선임 결의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가 피선임자에 대해 임용계약의 청약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총을 열어 해당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결의를 하거나, 그런 해임결의가 여의치 않다면 그에 대한 해임의 소를 본안소송으로 해 대표이사의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구하거나, 대표이사를 상대로 해 그의 회사 및 제3자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길이 열려 있었다. 이 밖에 민법상의 불법행위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이처럼 대표이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임용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구제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은 이 판결로 회사의 대표이사에게 이사·감사 선임의 거부권을 부여한 기존 입장을 변경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판결은 주총에서 이사·감사로 선임된 자에 대해 대표이사가 임용계약 체결을 거부하더라도 그 대표이사에 대한 책임추궁이 현실적으로 녹록지 않다는 사실까지 감안한 결과물이다.

궁극적으로 대법원은 이 판결을 통해 주식회사에서 이사·감사의 선임은 주주총회의 전속권한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 권한행사에 대해 실효성을 부여해 주주총회가 주식회사 최고기관임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러나 그동안 대표이사가 가졌던 피선임자에 대한 임용계약체결권한은 경영권분쟁이 있는 상황에서 주주총회 결의를 사실상 무력화해 기존 경영진의 교체를 막을 수 있는 우회로였는데, 이 판결로 현 경영진이 활용할 수 있는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방법 중 하나가 봉쇄됐다는 점에는 유의해야 한다.

■ 외부감사인은 여전히 대표이사가 계약 체결

주식회사에 대한 감사는 내부감사와 외부감사로 나뉜다. 전자는 상법에 따라 감사·감사위원회가 수행하는 반면 후자는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상 특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 의무적으로 요구된다.

외감법에 따르면 외부감사는 회계처리를 적정하게 하기 위해 주식회사로부터 독립된 외부 감사인이 그 주식회사에 대해 하는 회계감사를 의미한다. 외부감사를 받아야 하는 주식회사에서 그 대표이사는 외부감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외부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주체다.

상법상 감사와 외감법상 감사가 그 성격이 회사 내부의 감사 혹은 회사 외부의 감사인에 의한 감사라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양자 모두 그 감사대상에 대표이사가 포함된다. 그러나 이 판결은 내부감사에 한해서는 대표이사가 감사대상임을 이유로 감사취임 여부를 대표이사에게 맡길 수 없다는 입장이다.

권재열 <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