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 카스파로프 지음 /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428쪽 / 1만6000원
카스파로프는 《딥 씽킹》에서 딥블루와의 대결을 복기하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물음을 던진다. 그는 “기계가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2005년 은퇴 후 비즈니스 리더들을 대상으로 강연과 저술 작업을 하고 있는 그는 2013년부터 옥스퍼드대 인류미래연구소에서 객원 연구원으로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그는 20년 전 딥블루와의 경기를 복기하며 기계와의 대결이 가져온 생소함, 불안감, 좌절감에 대해 이 책에서 얘기한다. 게임을 치르는 여섯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시계 초침 소리에 조급함을 느끼지 않으며,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도 없는 상대와 겨루는 것은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이길 수 없다면 함께하라”며 인간과 기계의 협력을 강조한다. 이제 인간과 기계가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고 기계의 발전은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두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기계와 기술의 힘을 빌려 인간 능력의 도약대로 삼자고 주장한다.
2005년 ‘어드밴스드 체스 대회’는 인간과 기계가 협력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 보여준 사례다.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이나 컴퓨터와 함께 팀을 이뤄 게임을 했다. 이 대회 우승자는 딥블루처럼 체스에 특화된 슈퍼컴퓨터를 가지고 나온 프로 체스기사가 아니었다. 컴퓨터 3대를 동시에 가동한 미국의 아마추어 기사 2명이었다. 컴퓨터의 전술적 정확성과 인간의 전략적 창조성 간 조합이 게임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그는 이에 대해 “‘약한 인간+기계+뛰어난 프로세스’는 어떤 슈퍼컴퓨터보다 강하다”고 말한다.
앞으로 AI 때문에 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그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직업군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협력을 설계하는 분야를 눈여겨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계에 더 많은 과제를 맡기고 인간은 더 깊게, 더 넓게 생각하며 창조적인 활동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그는 “AI가 다양한 인간 활동을 대체하는 단계를 넘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