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어제 열린 5대 그룹 경영진과의 간담회에서 “자발적인 개혁의지에 의구심이 든다”며 참석자들을 질책했다. 김 위원장은 25분 넘게 진행된 공개발언을 통해 “공정위가 나서기 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달라”고 주문했다. 공정위와 5대 그룹 간 소통을 위한 자리였다지만, 대기업들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변화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는 참석자 요청에 “시간을 너무 많이 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사외이사 선임 등 주요 현안과 관련해선 평상시에 기관투자가들과 대화하고, 하도급 거래의 투명성을 위해 구매부서 임직원들의 KPI(핵심성과지표)를 바꿀 것도 요구했다. KPI 개편 등은 공정위 업무와 무관한 경영간섭으로 비칠 소지가 있는 발언이다.

공정위는 재벌개혁 목표로 총수일가의 전횡 방지, 편법적 지배력 강화 및 부당한 경영승계 차단, 사익편취 및 부당내부거래 근절, 금융계열사를 통한 지배력 강화 방지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안은 내놓지 않고 있다. 그래놓고선 서둘러 모범사례를 내놓으라고 기업들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요즘 마치 죄인이 된 듯 위축돼 있는 기업이 적지 않다. 공정위의 부당 하도급 조사와 검찰 수사 등이 전방위로 벌어지고 있어서다. 롯데에 대한 수사만 해도 처음엔 비자금에서 시작됐으나 혐의를 찾지 못하자 별건인 탈세 수사로 전환해 총수 일가에게 ‘중형’이 구형됐다. 다른 대기업들도 불똥이 어디에서 날아들지 알 수 없어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래서는 온갖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과감한 투자에 나서는 기업인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기대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