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런 일본 소주시장에 한국 토종 소주가 일본의 유명 브랜드들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바로 ‘교게쓰(鏡月)’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는 소주입니다. 예, 맞습니다. 한국에서 예전 ‘경월 소주’로 판매되던 바로 그 소주입니다.
롯데주류재팬에 따르면 경월은 일본 진출 9년만인 2004년 한국 주류업체 수출 선두를 차지한 뒤 줄곧 일본 내 한국 소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속식증류소주(‘참이슬’이나 ‘처음처럼’ 같은 한국의 보통 소주에 해당. 일본에서는 보통 갑(甲)류로 분류)분야에서 일본 소주 브랜드 다카라(寶)에 이어 경월이 2위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장조사 업체인 일본 인테지그룹이 올 1~9월 연속식증류소주 단일 브랜드 판매량을 샘플링 조사한 결과, 경월은 1만2786㎘의 판매량으로 일본 다카라소주(1만9089㎘)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경월의 판매량은 3위 업체(6680㎘)의 두 배에 달했습니다.
경월은 브랜드 인지도(음주 경험자 가운데 브랜드를 알고 있다는 응답 비율)도 70% 이상을 유지하면서 올해까지 14년 연속 일본 내 한국 소주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네요. 1995년 일본에 첫 선을 보인 경월은 통상 처음 시장에 진출할 때 채택하는 저가격 정책을 버리고 일본 소주에 비해 평균 20%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고급화 전략을 쓰면서 일본 주당들의 눈길을 끌었다고 합니다. ‘하늘의 달, 호수에 비친달, 바다에 비친달, 술잔에 비친달, 님의 눈에 비친달’의 5개 달이 강릉 경포대에 비친 모습을 묘사한 ‘경월’이라는 시적인 브랜드도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인들에게 손쉽게 다가가는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처음처럼’ 브랜드로만 판매되지만, 두개의 브랜드 모두 수출되는 일본에서는 ‘경월’ 브랜드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다고 합니다.
20년 넘은 역사, 설악산 천연수로 만들었다는 제품의 특성, 둥근 병 대신 고급 사각형 병을 사용한 점, 감미료 대신 보리 증류주를 첨가해 독특한 풍미를 구현한 점 등이 주효한 것으로 롯데주류측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 소주 시장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는 소식입니다. 인구 고령화와 건강중시 풍조, 외식산업 쇠퇴, 와인과 츄하이(흔히 한국에서 ‘복숭아술’로 알려진 술) 등 저도주 인기 등으로 소주 시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한국 소주의 일본 수출도 2012년 1억220만 달러 규모에서 2016년 5694만 달러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고 합니다. 롯데주류는 이런 시장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시장 창출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20여년 이상 경월소주를 애호했던 소비자층이 50대 이상이 된 만큼, 젊은 층과 여성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2012년 이후엔 기존 경월(20~25도)보다 낮은 알코올 도수 16도의 ‘훈와리 경월’을 출시했습니다. 아세로라나 유자, 감귤 등의 과일 향을 가미해 여성 소비자들을 주요 고객으로 끌어들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회사 측 평가입니다. 일본 여성들이 선호하는 여배우 이시하라 사토미를 캐스팅한 광고도 만들어 대대적인 홍보도 했습니다. 올해부터는 담백한 음식이 많은 일본 식문화 특성을 고려해 단맛을 줄이고 깔끔한 맛을 강조한 ‘훈와리 경월 클리어’도 출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홋카이도 등 추운 지역에서 대용량 제품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 특성을 고려해 최대 5ℓ짜리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종훈 롯데주류 대표는 지난달 31일 도쿄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롯데주류 매출의 10%를 수출이 차지하고 있고, 수출 물량의 70%이상이 일본시장을 겨냥하고 있다”며 “한국제품 불모지대라는 일본 시장에서 선전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주류 회사 뿐 아니라 다른 여러 분야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일본 시장에서 약진해 나가길 바랍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