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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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가 뜬다. 완전히 낯선 얘기는 아니다. 동네 책방, 필름 카메라, 레코드판(LP) 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풍문’이 귓가를 간질인 지는 꽤 됐다.

알음알음, 몇몇의 취향으로 여겨지던 아날로그 선호가 ‘신드롬’으로 확인된 것은 지난 7월 데이비드 색스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이 출간되면서부터다. 이 책은 종이와 필름, LP, 보드게임 등을 소재로 삼았다. 반향이 컸다. 한 달 만에 4쇄를 찍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날로그 감성을 반기는 이른바 ‘아날로거(analoger)’들의 커밍아웃이 잇따른 덕분이었다.

이처럼 재발견된 아날로그는 새 트렌드가 되었다. 느리고 손이 가며 번거롭고 오프라인의 속성을 갖는, 아날로그의 약점은 고스란히 ‘힙(hip)’한 강점으로 바뀌었다. 모두가 디지털 세계로 편입되는 시점과 맞물려 벌어진 ‘역주행’이다.

흔히 떠올리는 복고 바람과는 분명히 다르다.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하고 카메라 필름 현상을 손꼽아 기다리며 턴테이블에 LP를 올리는 이들의 대다수가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젊은층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온라인과 스마트폰으로 표상되는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새삼 아날로그라는 예스러움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날로그를 힙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힙하다는 건 ‘쿨’하거나 ‘핫’한 것과는 또 다르다. 보편적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좇으며 대중과 차별화하는 부류를 가리키는 속어 ‘힙스터(hipster)’에 연원을 둔 이 감성은,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청년층의 욕구에 딱 들어맞았다.

베스트셀러가 된 〈아날로그의 반격〉.
베스트셀러가 된 〈아날로그의 반격〉.
아날로그가 얼리어답터(앞선 사용자)에 의해 전략적으로 선택됐다는 얘기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새로운 것, 남들과 다른 것이었던 디지털이 흔해빠진 것으로 전락했다. 이제 얼리어답터가 매력을 느끼는 대상이 아날로그가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올 3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펴낸 ‘중장년층의 스마트미디어 보유 및 활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50대의 스마트폰 보유율(89.5%)이 10대(82.7%)를 앞질렀다. 중장년층이 더 이상 디지털 소외 세대가 아니며, 동시에 젊은이들에게 더 이상 디지털은 매력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년층부터 앞장서 디지털에서 벗어나는 현상의 단초로 보인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개념에 따르면 주어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피하며 저항하는 것이 탈주다. 아날로그를 향한 디지털에서의 탈주가 시작된 셈이다.

단 아날로그의 희소가치에만 주목해서는 현상을 오롯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자동화로 편하고 빠르며 온라인 환경에 걸맞은 디지털의 여러 강점을 대신하려면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는데, 직접 만나고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아날로그만의 진정성이 이에 해당한다.

아날로그풍 감성을 연출할 수 있는 로모 카메라를 즐겨 사용하는 대학원생 김모 씨는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화질은 더 뛰어나지만 로모 카메라 특유의 색감이나 뭔가 노력을 들여 성취한다는 느낌이 좋다”고 귀띔했다.

아우라(후광)의 차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발전으로 인한 대량복제가 예술작품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파괴한다고 짚었다. 바꿔 말해 손쉽게 양산 가능한 디지털의 편의성은 아날로그적 진정성과 반비례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힐링 또한 주로 면대면 만남에서 일어나는, 아날로그가 강점을 지닌 분야다. 최인아 책방은 추석 연휴 당시 호젓한 서재에서 책과 맥주를 함께 즐기거나 공연을 관람하는 자리를 마련해 호응을 얻었다. 상담을 통해 각자의 취향과 마음 상태에 따라 책을 추천받는 ‘책 처방’도 입소문을 탔다. 대형 온라인 서점의 빅데이터 기반 추천과 다른 결을 갖는 아날로그 특유의 서비스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핸드메이드(수제) 시장 성장세 역시 아날로그의 재발견과 맥이 닿는다. 아날로그의 정점 격인 핸드메이드는 ‘진정성이 담긴 하나밖에 없는 프리미엄 제품’이란 뜻으로 진화했다. 단순 수공업을 넘어 체계적 시스템을 갖춘 시장으로 거듭났다. 정밀하지만 획일적인 디지털 상품이 개별 소비자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데 착안해 틈새시장을 파고들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소통하며 취향에 걸맞은 제품을 사고 팔 수 있는 아날로그 소비 패턴의 영향이다. 박주영 교수는 “아날로그 자체는 오래된 것이지만 지금 각광받는 아날로그 현상은 남과 다른 구별 짓기 욕구에 개성과 진정성이 결합된 새로운 미래 트렌드”라고 의미 부여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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