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 기업으로 군림했던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릭(GE)이 대규모 구조조정을 준비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16년간 GE를 이끈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실적 부진으로 불명예 퇴진하고, ‘재무통’ 존 플래너리가 최고경영자(GE)로 발탁된 지 2개월여 만이다. GE가 중국 상하이 등 세계 각국에 있는 연구개발(R&D)센터까지 폐쇄할 것이란 얘기가 돌자 “GE 상황이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위기의 GE '극강 다이어트' 돌입… R&D센터 폐쇄·임원 전용기 매각
◆얼마나 어렵길래

WSJ에 따르면 플래너리 CEO는 다음달 인력 감축을 비롯한 대규모 사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구조조정 방안에는 GE의 글로벌 사업 축소, 인력 감축, R&D 지출 축소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부 매각과 인력 감축은 그동안 GE가 꾸준히 해온 것이다.

하지만 회사 핵심 경쟁력과 직결되는 R&D 지출까지 손대는 것은 이례적이다. WSJ는 GE가 R&D 지출을 줄이기 위해 상하이, 독일 뮌헨,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글로벌 R&D센터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렇게 되면 GE의 R&D센터는 미국 뉴욕과 인도 벵갈루루 두 곳만 남는다.

GE의 전체 매출 대비 R&D 지출 비중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 전후에 그쳤지만 매년 꾸준히 상승해 최근 4%대 중·후반에 육박하고 있다. GE 대변인은 “회사는 글로벌 사업과 주요 고객군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라는 말로 구조조정 작업이 이뤄질 것임을 내비쳤다.

◆“비용 지출 축소하라”

GE의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멜트 전 회장이 지난 8월 급작스럽게 사임한 주된 원인이 실적 및 주가 부진이었기 때문이다. 이멜트 회장 재임 16년간 뉴욕증시의 S&P500지수가 124% 상승하는 동안 GE 주가는 약 30% 하락했다. 올 들어서도 S&P500지수를 포함한 뉴욕증시 3대 지수가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을 벌이는 것과 달리 GE는 25% 떨어졌다. 주가 하락에 따라 시가총액 800억달러(약 90조6000억원)가량이 증발했다.

최근 13분기 중 10분기 매출이 시장 예상치를 밑돈 것이 주가 부진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핵심 사업부인 GE캐피털이 부진하고 가전사업부 경쟁력이 하락한 데다 이멜트 전 회장이 신사업으로 추진한 원유·가스사업이 국제유가 하락으로 발목 잡힌 것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GE캐피털과 가전사업부는 매각됐다. 발전 헬스케어 항공 등 GE 주요 사업부문의 순이익률은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회사 전체 순이익률은 경쟁사보다 크게 낮다. WSJ가 분석한 결과, GE의 전체 순이익률은 지난해 21.3%로 지멘스(29.9%) 유나이티드테크놀로지(27.9%)에 한참 못 미쳤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행동주의 투자펀드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가 GE의 방만한 비용 지출이 수익성 악화의 ‘주범’이라며 강도 높은 비용 절감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달 초엔 에드 가든 최고투자책임자(CIO)를 GE 이사로 입성시키는 데 성공했다. GE로서는 구조조정 고삐를 죌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강력한 구조조정 예고

시장에서는 플래너리 CEO의 개인적인 경력과 성향을 감안할 때 GE의 이번 구조조정이 전례 없는 강도로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는 GE에서 31년간 근무한 ‘GE맨’이지만 스타일은 제조업 종사자보다 사모투자펀드(PEF) CEO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GE에서 근무할 때도 가전사업부 매각, 프랑스 알스톰의 에너지사업부 인수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했다.

플래너리 CEO는 취임 첫날 전체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좋은 의도를 갖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결과”라며 실적이 부진한 직원이나 사업부는 과감하게 구조조정할 것임을 예고했다. 또 GE 임원진이 사용하던 전용기를 매각하고, 매년 말 임원진을 대상으로 휴양지에서 열어 온 송년 행사도 취소했다.

WSJ는 “플래너리 CEO가 취임한 지 불과 두 달여 만에 전임자들이 남긴 ‘유산’과의 과감한 결별을 시도하고 있다”면서도 “그의 이런 시도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라고 내다봤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