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전자 계열사 등 자회사 인사 및 전략 업무를 총괄한다는 방침은 사실상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별도의 컨트롤타워를 세워 계열사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시스템 대신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하는 통합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풀려나기 전에 경영구조 개선 작업을 시작한 것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진행 중인 재판과 관계없이 기업 경영을 정상화하겠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다.
삼성그룹, 전자·생명·물산 '3개 소그룹' 체제로 재편
◆“이대로는 안 된다”

지난 3월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전격 해체된 이후에도 삼성 안팎에서는 “계열사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시너지를 낼 조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단체 시절 ‘삼성 저격수’라는 별칭을 얻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조차 “권한만 행사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가 문제였을 뿐 그룹 컨트롤타워는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할 정도였다.

하지만 삼성 측은 매번 “미래전략실과 같은 별도 조직은 만들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고위경영진에 대한 2심 선고가 내년 초로 예정된 것도 현재의 경영 시스템이 당분간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싣는 요인이었다.

이런 분위기가 최근 바뀌기 시작했다. 그룹 총수와 컨트롤타워가 동시에 부재하면서 생기는 부작용이 예상보다 크다는 판단에서다. 재판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조직 구성원이 느슨해진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실상 허수아비 상태의 최고경영자(CEO)도 있다”는 얘기가 삼성 내부에서 흘러나올 정도였다. 최순실 사태로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를 건너뛰면서 퇴직할 것으로 예상되던 CEO들이 현직에 남아 있는 탓이라는 분석이다.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

삼성전자는 과거 미래전략실의 7개 기능 중 전략과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경영 사안은 자회사 경영진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내부에 자회사의 전략과 인사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을 신설하거나 기존 내부 조직을 확대 개편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킨다는 비판도 피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이 강조하는 이사회 중심의 글로벌 선진 경영에도 부합한다. 주요 안에 대해선 삼성전자 이사회 논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중단한 글로벌 기업 CEO 출신 사외이사를 영입하는 방안도 재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등 주요 계열사도 삼성전자와 비슷한 지배구조 개선 작업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삼성그룹이 전자, 생명, 물산을 주축으로 한 3개 소그룹 체제로 재편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사 폭·시기에 촉각

삼성전자가 직접 거느리고 있는 전자계열 자회사는 삼성디스플레이(지분 84.8%), 삼성SDI(19.6%), 삼성전기(23.7%), 삼성SDS(22.6%) 등이다. 사업 연관성이 높고 그동안 인사 교류도 활발해 전략 및 인사 업무 통합에 문제가 없다. 삼성전자가 최대주주인 삼성중공업(16.9%)과 삼성SDI가 지배하는 삼성엔지니어링(11.7%) 등 중공업 계열사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 임직원은 임원 인사를 조기 단행하려는 움직임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돼 임직원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 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부사장급 이하 임원 인사가 곧 단행된다는 얘기가 파다하다”고 했다. 사장단 인사도 올 연말 예년처럼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