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영국 대사관저의 꿀벌
필자는 열렬한 꿀(그리고 꿀버터칩) 애호가다. 한국에 살면서 여러 한국 토종꿀을 맛보는 게 즐겁다. 그러면서 꿀과 벌이 한국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됐다.

세계적으로 벌은 오랫동안 고귀한 존재로 간주됐다. 기독교에서 벌은 초기 교회의 상징이었다. 나폴레옹은 벌을 제국의 상징 중 하나로 채택했다. 작물의 수분(受粉)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벌은 오늘날에도 중요하다.

꿀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라는 표현에도 등장한다. 이집트 피라미드에선 완벽하게 먹을 수 있는 상태로 3000년 된 꿀 냄비가 발견된 적이 있다. 꿀은 식용을 넘어 미용 또는 약용으로도 쓰인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토종꿀을 먹으면 건초 및 기타 꽃가루 알레르기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2013년 서울시가 도시 양봉을 허가했는데, 필자는 한국에서 벌 개체수를 늘리는 데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2015년 꿀벌을 서울 영국 대사관저에 가져오기 위해 특이한 파트너십을 맺었다.

어반비즈(urban bees)는 벌과 양봉을 교육하기 위해 한국에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와 함께 서울에 도시 생태계를 조성하고 유지하며, 도시 곳곳에서 약 60개의 벌집을 관리한다.

슈퍼잼은 영국 기업이다. 프레이저 도처티가 할머니의 요리법을 따라 잼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시작은 소박했지만 수많은 상을 받았고, 지금은 수백만 병의 잼을 팔고 있다.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에 ‘스코틀랜드 음식 브랜드의 아이콘’ 사례로 전시되는 영광도 안았다. 슈퍼잼은 ‘슈퍼허니’라는 제품도 개발했는데, 한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어반비즈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영국 대사관저에서도 벌을 키우게 됐다. 우리는 운 좋게도 매우 아름다운 정원 속에 살고 있다. 덕수궁과 미국 대사관저 정원과도 이웃하고 있어 벌들의 먹이가 넘쳐난다. 2015년 봄 6만 마리의 벌이 든 벌집 3개가 관저에 도착했다. 이후 벌들은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다.

꿀벌은 대체로 번창했지만, 초기에 말벌 때문에 애를 먹었다. 말벌은 벌집 밖에 숨어있다가 꿀벌이 나오면 그들을 죽이고 꿀을 훔쳐 먹었다. 어반비즈는 끈적끈적한 함정으로 말벌을 처리했다.

매년 각 벌집에서 생산된 꿀 가운데 약 10㎏은 우리에게 주어진다. 멋진 선물이다. 나머지는 슈퍼잼과 어반비즈를 통해 팔린다.

이렇게 우리 꿀벌은 지속가능한 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 보람 있는 한국의 사회적 기업을 도우면서 동시에 영국 비즈니스도 지원하고 있다.

찰스 헤이 < 주한 영국대사 enquiry.seoul@fco.gov.u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