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을 계기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개혁 방향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초 예상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의 지지 기반이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개혁에 걸림돌이지만, 더 강한 통합을 주장해 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독일을 강하게 밀어붙일 기세다.

지난 5월 마크롱 대통령 당선 후 유럽연합(EU) 내에서는 독일 총선이 유로존 개혁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공동 통화를 쓰면서도 금융·자본시장·재정 등이 통합되지 않아 위기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유로존의 ‘불완전성’을 보완할 기회로 여겼다. 도날트 투스크 유럽의회 의장은 오는 12월 유로 정상회의를 소집하며 김칫국을 마셨다.

하지만 독일 총선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여당과 연정을 이룰 가능성이 높은 자유민주당(FDP)은 마크롱이 제안하는 유로존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 제3당으로 부상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당은 재정이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을 유로존에서 퇴출하자고 주장하며 메르켈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안으로는 연정 상대방을 달래고 바깥의 공격을 막아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

강한 통합을 요구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독일이 소극적으로 돌아서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는 26일 유로존 회원국의 공동 예산을 조성하고 재무장관을 신설하자는 내용의 개혁안을 제시했다. 파리 소르본대에서 발표했지만, 프랑스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연정 구성을 앞두고 있는 독일 정치인을 겨냥한 것이라고 AFP통신은 설명했다. 먼저 의제를 선점하고 방향을 제시하려는 취지다.

프랑스는 5~10년 내에 공동 예산 체제를 확립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dpa통신은 유로존 예산을 관할할 의회 구성과 관련해 프랑스가 유럽의회에 유로존 의회 기능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공동 예산과 재무장관 신설 자체를 반대하진 않으나 예산 규모를 작게, 장관 권한도 작게 하자는 쪽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