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차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했던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지난 25일 귀국 전 맨해튼의 숙소 앞에서 “미국이 선전포고한 이상 미국 전략폭격기들이 설사 우리 영공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발언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유엔총회가 북·미 간 ‘말폭탄 전쟁터’로 전락한 가운데, 리 외무상의 입장 발표에 담긴 의미와 향후 북한의 추가 도발과 관련돼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리 외무상의 발언에 대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리 외무상의 입을 빌려 미국을 향해 고도로 계산된 과격한 표현을 했다”며 “유엔 회원국이란 지위를 악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번에도 한국 정부의 무력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정부가 좀 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긴급 진단에선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 신각수 국제법센터 소장,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의 의견을 각각 들어봤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사진)은 “북한은 절대 체제가 망할 일은 하지 않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진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선 미국과 서로 말로 기선 제압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선 언어 역시 총칼과 같은 무기로 여기기 때문에 선전과 선동에 무척 공을 들인다”며 “북한의 발언 하나하나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면 오히려 북측의 계략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차관은 “가장 염려되는 건 한국 정부에 대해 국제 사회가 ‘우리와 동떨어지게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각국에선 대북 제재와 압박 공조를 강조하는데, 한국 정부에선 자꾸 대화를 강조한다”며 “다른 나라들은 그런 한국 정부를 매우 의아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 “정부가 현 상황을 직시하고 시의적절한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대북 정책과 관련해 마땅한 콘트롤 타워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신각수 국제법센터 소장(사진)은 “남북한은 한반도 내에선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지만,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선 두 개의 국가로 인정받는 특이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 소장은 “북한이 자위권 관련 발언을 한 것도 유엔 회원국이란 지위를 십분 활용한 것”이라며 “한국 정부로선 상당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그는 “리 외무상의 발언 의도야 미국에 대한 추가 도발 강화 의지를 재천명한 것이다”라며 “다만 이번 발언을 봤을 때 북한이 국제법적 연구를 상당히 많이 하고, 무척 정교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사진)은 “북한의 최종 목적은 대남 적화통일이란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엔은 사실상 끝났다”며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한 채 강대국에 휘둘려 마치 유엔 출범 이전 상태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박 원장은 “한국 내부나 미국에서조차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여전히 동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리 외무상의 발언에 너무 관심을 두고 확대해석을 하는 게 오히려 북한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라며 “리 외무상 입장으로선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성난 심기에 발맞춰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