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北완전파괴' 발언에 文대통령 '北변화 도구'로 평가하며 선 그어
美세컨더리 보이콧 환영 의사로 '군사옵션 실행' 제외 모든 수단 지지
美, 韓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 협조·전략자산 순환배치 확대 약속 '성과'
金 "초강경대응" 성명으로 추가도발 시사…오늘밤 귀국 文대통령 대응 주목
문 대통령-트럼프 '최고압박' 지속… 일단 외교적 해결 기조 유지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1일(미 동부시각) 미국 뉴욕에서의 두 번째 정상회담은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최고의 압박과 제재의 깊이를 심화한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그간의 대북 기조를 유지한 것이지만, 두 정상이 북한의 핵실험 등 초고강도 도발에도 군사옵션을 거론하지 않는 대신 한국의 군사자산을 확대해 북한을 옥죌 압박의 수준을 높여가기로 합의했다는 측면에서 대북 선택지를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문 대통령은 군사적 옵션까지 거론하며 초고강도 발언을 잇달아 내뱉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며 북한 문제의 평화적·외교적 해결이라는 큰 틀의 기조를 끌어낸 것은 적지 않은 성과로 볼 수 있다.

한미 정상회담 직후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북한이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대화의 장에 나오도록 국제사회가 최고 강도의 제재·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전했다.

이는 '북한 완전파괴'를 거론한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기조연설로 인해 제기됐던 문 대통령과의 '균열' 우려를 불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대단히 강력한 연설을 해줬는데, 저는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반드시 변화시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군사적 옵션 실행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선 것으로 볼 수도 있었던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 자체를 북한 변화의 도구로 공식화하는 동시에 지지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역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압박과 제재의 하나로 해석했음을 직접 전달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이 너무 앞서갔다는 인식 하에 북핵을 포기시키려는 방편 차원에서 '말로만의 위협'으로 선을 그어준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무역거래를 하는 외국은행과 기업, 개인을 겨냥한 새 대북제재 행정명령에 서명한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에 대해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를 이루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며, 단호한 조치에 감사한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군사적 옵션 실행만을 제외한다면 대북 압박조치가 무엇이든 지지하며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그간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해왔던 한반도 군사자산 전개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좀 더 속 깊은 얘기를 나눴다.

미국이 한국의 최첨단 군사자산 획득·개발에 적극 협조하고, 한반도에 미국 전략자산 순환배치를 확대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이는 미사일 탄두중량 제한 해제에서 시작된 한국의 군사자산 확대 추진이 핵추진 잠수함 도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문제가 거론되지 않았다고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문 대통령이 이미 핵추진 잠수함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는 점에서 실무진 간의 물밑 협의가 진전됐을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문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과 유엔총회 참석은 '한반도 전쟁 불가'라는 움직일 수 없는 원칙을 확고히 하면서도 그 이외 수단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보폭을 맞추고 있다는 메시지를 국제사회에 분명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도 일단 군사적 옵션 실행을 배제한 대북 압박·제재에 트럼프 대통령과 또다시 의견을 같이하며 한반도 긴장도를 더는 높이지 않았지만, 주변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전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 파괴' 발언에 대해 "그에 상응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 단행을 심중히 고려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트럼프 대통령을 '불망나니', '깡패'로 지칭하며 "트럼프가 무엇을 생각했든 간에 그 이상의 결과를 보게 될 것",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추가 핵실험이나 중장거리 미사일 도발을 시사하는 것으로, 발언의 수위를 고려했을 때 괌 주변 해역으로의 미사일 발사를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당장 북한이 한 발짝 더 나아간 도발을 감행한다면 미국 내 매파의 군사옵션 실행 주장에 힘을 보태줄 수 있어 문 대통령의 북한 해법을 더욱 꼬이게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평화'를 32번이나 언급한 데 이어 미국 보수의 상징인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평화론'을 거론하며 한반도 상황의 안정적 관리를 강조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김 위원장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엔에서의 첫 다자 정상외교를 마치고 이날 밤 귀국하는 문 대통령의 북한 문제 해법 구상에 또다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 기자 honeyb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