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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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5일 호주 브리즈번 힐튼호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호텔방에서 6시간 동안 독대했다. 그해 2월 일어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의제였다. 6시간의 독대를 포함해 16시간에 걸친 회담에서 양측은 무조건 휴전, 전선의 중화기 철수, 전쟁포로 석방, 우크라이나 헌법 개혁에 합의했다. 문제의 영구적 해결은 아니었지만 메르켈과 서방 세계의 동맹들이 푸틴의 ‘깡패 전술’에 상당한 재갈을 물린 합의였다.

합의에 이르기까지 메르켈의 지략이 주효했다. 러시아어에 능통한 메르켈은 푸틴의 약점을 잘 알았다. 그의 과시욕, 강대국의 위대한 정치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메르켈은 유럽연합(EU) 각료이사회에서 “러시아가 국제법을 준수할 때까지 G8 정상회의는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해 6월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소치에서 열릴 예정이던 G8 정상회의에서 위세를 과시하려던 푸틴에게 굴욕을 안긴 것. 이후 협상 테이블로 끌려온 푸틴의 협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책마을] 정치 몰랐던 물리학도, 어떻게 '유럽의 여제' 됐나
《앙겔라 메르켈》은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인 메르켈의 전기다. 폴란드계 동독인 출신인 메르켈은 소박한 옷차림, 메르켈리즘이라 불리는 포용적인 정책 등으로 집권 12년차에도 여전이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빼어난 협상력과 리더십을 발휘하며 독일을 EU의 맹주로 탄탄히 자리잡도록 이끌고 있다.

영국 코벤트리대 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런 메르켈의 삶을 출생과 성장기부터 정치 입문과 국내외 무대에서의 활약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하게 풀어낸다. 메르켈의 개인사는 물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역사까지 생생하게 전개한다.

메르켈은 루터교 목사인 아버지를 찾아 생후 8주 만에 어머니와 함께 고향을 떠나 동독으로 넘어갔다. 공산독재국가 동독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마저 억압당한 채 숨죽이며 성장기를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두각을 나타내 사상의 영향을 가장 덜 받는 학문인 물리학을 전공해 과학아카데미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정치나 사회문제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였다.

하지만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의 삶이 확 바뀌었다. 민주개혁당에 스스로 들어간 그는 불과 몇 주 만에 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1년도 안 돼 독일 내각의 최연소 장관이 됐다.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그를 발탁했지만 메르켈은 굳이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콜이 불법 기부금과 관련해 문제가 되자 콜과 그 후계자인 볼프강 쇼이블레를 조목조목 비판한 1017자의 칼럼으로 당대표의 생명을 끝내버렸다.

메르켈은 모든 문제를 신중하게 숙고한 뒤 방향이 정해지면 확실하게 추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였다. 물리학자 출신에다 환경부 장관, 여성청소년부 장관만 경험해본 메르켈은 경제문제를 다뤄본 적이 없었다. 독일 정부의 결정이 늦어지자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과 사회민주당(사민당)의 노련한 정치인들은 그에 대해 ‘두려워한다’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식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가능한 모든 결과를 고려해본 메르켈은 독일 정부가 독일 은행들의 모든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메르켈의 기질은 학창 시절에도 그대로였다. 맨 처음 3m 높이에서 다이빙을 해야 했을 때 그는 한참 동안 물을 내려다봤다. 아이들이 수군대고 비웃었다. 그는 뒤로 돌아섰으나 내려오지는 않았다. 앞뒤로 몇 번 왔다갔다 한 그는 마침내 뛰어내렸다. 상황을 다각도로 분석하는 것은 성급하게 결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인함과 확실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훗날 메르켈은 설명했다. 심사숙고하고 실행에 앞서 결과를 가늠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낫기 때문이다.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쇄도하던 2015년에도 그랬다. 동유럽 국가는 물론 영국 프랑스 등도 일정 수준 이상의 난민 수용을 거부할 때 메르켈은 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치적 반대파는 물론 지지층도 그를 비난했다. 하지만 메르켈은 모든 가능성을 검토하고 결정했다. 세계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인 독일은 언제나 숙련된 노동자가 부족했다. 인구고령화가 심각해 노인층을 부양할 청년층이 많이 필요했다. 독일 재무부는 이민자 유입으로 200억유로가 드는 반면 그들이 정착하면 수요가 증가해 독일 상점과 기업들이 더 많은 고객을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자를 수용함으로써 2020년까지 독일 경제가 1% 이상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근거가 있었기 때문에 메르켈은 그해 말 발생한 이민자 테러와 폭동에도 불구하고 난민정책을 고수할 수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