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이익만 추구하지만 정작 이익은 얻지 못하는 상태."

방산 비리, 자원 개발 등 국책사업 비리, 국가재정 손실 비리, 사회안전 비리 등 뇌물과 부패 사건이 연일 터져 나오는 현재 한국 사회는 이와 같은 말로 규정할 수 있다. 게오르그 켈 아라베스크 파트너스 회장(사진)의 '지속가능금융' 모델에 따르면 말이다.

2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2017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켈 회장을 만났다. 켈 회장은 유엔 글로벌콤팩트(UNGC)의 초대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지속가능경영'을 전세계에 널리 알렸다. 최근에는 지속가능경영에서 보다 진일보한 모델인 지속가능금융을 내놨다.

켈 회장은 인터뷰 내내 '착한 성장'을 강조했다. 지속가능금융도 착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이다. 성장의 질이 낮으면 사회 비리가 만연하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켈 회장은 "최근 시장의 트렌드를 보면 자기 파괴적"이라며 "돈만 좇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책에 대해서도 "보다 성장의 질이 논의됐으면 한다"며 '비판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켈 회장은 경제 지표 개선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고려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라고 조언했다.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최혁 기자 chokob@hankyung.com
▷지속가능금융이 뭔가. 지속가능경영과는 다른 것인가

"지속가능경영이란 기업의 경제적인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환경문제에 기여함으로써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여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경영활동을 말한다. 지속가능금융은 이러한 기업에 투자하는 개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환경과 사회적인 참여, 모범적인 지배구조 등 이 세 가지 분야에서 평균 이상 성과를 내는 기업들에 한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환경과 사회적인 참여,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ment·환경, 사회, 지배구조투자)라고 지칭하고 있다."

▷지속가능금융이 왜 중요한가

"현재의 시장 경제는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띄고 있다. 이윤만 추구하는 행태를 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사회가 흘러간다면 인류는 현재의 소득이나 웰빙 수준을 향후에도 유지하는 것이 어렵게 된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 번째는 지구 온난화다. 두 번째는 천연자원 고갈에 따른 문제다. 특히 물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세 번째는 점점 더 사회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이와 같은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환경 재화들이 줄어드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사회에 편입되지 못하는 불평등을 더 이상 용인하지도 않는다. 민중 봉기가 일어나면 그나마 추구하던 이윤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그전에 시장이 변화해야한다고 봐 그 방안으로 지속가능금융을 내놓은 거다."

▷시장경제의 논리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지속가능금융이 이윤 창출을 방해할 수 있지 않나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ESG의 성과가 좋을 경우 재무적인 지표 또한 더 개선될 수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공공재와 사적 이익 사이의 교집합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부족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다. 물부족 현상은 개인에게 불편함을 주지만 기업의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교육 혜택을 누리기 힘든 사회에서는 개인도 불이익을 보지만 기업도 필요한 인재를 얻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지금은 산업시대가 아니다. 민간과 기업의 경계가 명확히 나누어졌던 과거와 달리 현재에는 그 경계가 모호하다. 공통의 이익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는 서비스나 제품에 대해 재정의를 내려야 하는 시대다. 당장의 이윤만 추구하는 것은 단기적인 시각일 뿐이다."

▷ESG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보자. 지배구조 항목이 눈에 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지배구조 이슈는 화제다.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 현대차 등이 지배구조 개편 문제를 논의했거나 논의 중이다.

"지금은 전세계적으로도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재정의해 나가는 시기다. 기존에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고민해야할 시기다. 즉 기업 내 구성원이 아닌 기업 안팎을 둘러싼 사람들 모두가 고려돼야한다는 것이다. 조금 전 이야기했듯이 민간과 기업의 경계가 희석되고 있어서다."

▷잠깐. 한국의 경우 지배구조 개편의 속도가 ESG의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오너 중심에서 주주 중심 구조로 이제서야 넘어가는 중이다.

"대신 다른 영역의 발전이 빠르지 않나. 한국 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 속도는 느릴 수 있지만 환경과 사회적인 참여 면에서는 두드러진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환경 보호적인 측면에서 굉장히 효율적이다. 기업들의 디지털 발전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사용량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맞춰 반부패 정책을 펼친다던가 지배구조 개편을 독려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기업의 기술 변화와 정부의 의지가 지속가능성장, 착한 성장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 정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최근 한국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어떻게 보나

"기존의 전통적인 경제 성장을 하자는 입장에는 지지를 한다. 하지만 어떤 성장을 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없는 점이 아쉽다.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을 도모하는 장기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지 경제 지표 개선을 위한 단기적인 성장을 이야기하는 지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다."

▷전통적인 경제 성장 모델에 가깝다는 이야기인가

"완전한 전통적 성장 모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점진적인 혁신안은 담겨있다. 특히 최저 임금을 올리는 안 등이 구성원들의 사회 참여를 높일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판단한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정부 차원에서 개인들의 투자를 인위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보다는 조언을 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사실 한국 사람들은 금융 투자가 어떤 결과를 미치는 지 잘모르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을 규제하기보다는 가이드라인을 주고 투자가 야기할 수 있는 결과를 알려주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좋은 투자가 더 활성화될 것 같다."

■ 게오르그 켈 회장은...

2000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구하는 유엔 산하기관인 유엔 글로벌콤팩트를 설립했다. 초대 사무총장으로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재직하면서 세계 160개국 8000여 개 기업을 유엔 글로벌콤팩트에 참여시켰다. 유엔이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책임·지속가능경영 정책 개발, 실행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퇴임 후에는 '아라베스크 파트너스'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아라베스크 파트너스는 정보의 투명성을 통해 기관 투자자에서 소액투자자까지 누구나 손쉽게 지속가능하고 책임 있는 투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회사다. 현재 켈 회장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독려할 수 있도록 방안을 구상 중이다.

글=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사진= 최혁 한경닷컴 기자 chokob@hankyung.com